하나, 언제일까.
초연의 왜 여깄어를 사랑하듯 언제일까를 사랑한다.
초연의 왕이 된다는 것을 사랑하듯 언제일까를 사랑해.
그리고 시아준수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언제일까를 사랑하고 있다.
왜 여깄어가 몰락하고, 왕이 된다는 것이 자생력을 잃어 오직 시아준수에게만 의지하는 지금 언제일까는 내게 재연에서 단 하나 남은 '아더'다. 사실 이 노래 하나로 극이 끝났다고 생각해. 엑스칼리버라는 극 자체가 말하고자 하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연의 이 극이 말하고자 하는 것, 평범함 중에서 반짝이는 힘. 전부 언제일까 안에 있다. 작은 영혼이 애써서 피워낸 사랑에의 의지, 이 넘버 하나로 전부 아우르고 있어. 심지어 화자가 내가 너무나 사랑하는 목소리의 시아준수이므로,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것. 이 노래 안에서는 행복하지 않을 수 없는 것.
둘, 너무나 시아준수인 말 이름들.
하늘도, 구름도, 노을도, 햇살도. 매번 가장 평범하면서도 가장 반짝이는 것들을 골라오는 시아준수. 그런데 마침 골라온 이 이름들이 평시의 그가 늘 사랑해왔던 자연의 것들이라, 마음이 와르르 쏟아지고 마는 것이다. 노을, 낙엽, 수평선. 가삿말 쓸 때와 하나 다르지 않은 이 사람. 19년 전이나 지금이나 도무지 변하지를 않아서 너무나 내가 잘 아는, 그래서 이제껏 사랑해온 시아준수. 고작해야 말 이름일 뿐인데 내 안에 사랑을 넘치게도 채워넣는 시아준수.
그러니까 매번 너무나 시아준수스럽게 바뀌는 말 이름들 듣고 울컥한 와중에 언제일까가 시작되면, 바로 거기가 엑스칼리버 재연 행복의 최상층.
셋, 성호 긋는 시아준수.
찰나의 손동작이건만 보고 있으면 내 마음의 평화가 되는 장면. 성호 긋는 동작 자체는 물론 굳은 얼굴의 묵묵한 결연함까지 사랑한다. 무겁게 떨어지는 손에서 느껴지는, 전쟁이 임박한 비장함까지도 사랑해.
왜 이렇게나 좋을까, 조금 생각해보았는데 재연에는 거의 남지 않은 고전미를 느낄 수 있는 부분이라서인 것 같기도 해.
넷, 찬란한 햇살.
찬란한 햇살을 보고 있으면 알게 된다. 아더가 왕의 재목임을. 알 수밖에 없다. 아더만 보이니까. 같은 동작을 해도 두 눈 동그래지도록 다르게 예쁜 사람. 평범하다는 게 뭐지? 절대 그렇지 않다. 저 찬란함을 향해 도대체 어느 누가 평범하다 할 수 있을까. 목소리부터 웃음 찡그리는 콧등, 발재간, 몸 쓰는 동작 하나하나에서 느껴지는 귀티. 혈통의 힘이라는 게 정말 있고, 태생적 고결함이 정말로 눈에 보이는 거라면 그건 찬란한 햇살의 아더에게서 전부 볼 수 있다.
그저 반짝반짝.
온통 사랑.
아더, 너는 정말 특별한 아이야.
다섯, 이렇게 우리 만난 건의 넘버 배치는 극악하지만 호흡을 다스리는 시아준수는 정말이지 대단하다. 격렬한 전투가 있은 후라 다소간의 숨 차오름이 극적으로 어울리기도 하는데, 그걸 꾹꾹 눌러 담으며 이 잔잔한 노래를 감미롭게 불러내는 시아준수. 첫공부터 감탄뿐.
기네비어의 시선이 닿지 않는 곳에서만 아파하고, 두 눈 마주하면서는 계속 방긋 웃어보이는 얼굴까지도 사랑 연발.
여섯, 결코 질 수 없는 싸움.
역시 가창이겠지.
다른 하나를 곁들이자면 또 역시, 얼굴?
연출면에서는 극의 노래적 하이라이트가 아더의 엔딩 넘버에 있는 것도 몹시 좋은 부분. 노래가 30초만 더 길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지만, 이 글에서는 좋은 점만 쓰는 걸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