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윽고 서울 막공주의 첫 공연. 마지막 주를 시작하는 공연의 스타일링은 볼륨 방긋 살린 내린 아더.
마지막 주 첫공의 말들은 천둥 번개의 초심을 변형한 “썬더야 스톰아.” 이런 것도 시아준수다워서 애틋하다면 너무 바수니일까요.
〈찬란한 햇살〉 오늘의 프리댄스 역시 서울 막공 첫 주임을 알려주는 듯하였던, 다 같이 짜온 안무(서태지의 컴백홈이었다고 한다). 특히 아더와 강태을 랜슬럿이 짜 맞춘 듯이 합을 이룰 때는 오오~ 감탄했다. 전쟁이 휩쓸고 간 자리에서도 서로가 있기에 웃음이 있는, 참 화목해 보였던 오늘의 카멜롯.
〈내 앞에 펼쳐진 이 길〉 오케의 박자가 참 느렸는데 그 박자 안에 음을 다 샅샅이 채워 넣던 시아준수. 감탄할 뿐이에요. 특히 귀를 뜨이게 했던 소절은 “엑스칼리버도 내 것은 아~냐.” 음을 쪼갰다가 활짝 펼쳐낼 때의 벅찬 느낌, 거친 불길이 홧홧하게 솟구쳐 오른다는 게 이런 거겠지요.
〈검이 한 사람을〉 강태을 랜슬럿에게 달랑 들리는 샤아더, 형에게 몸을 맡긴 채로 본인의 두 다리를 쭉 들어 올리는 모습이 정말 너무너무 귀엽고 또 간지러우며 심장을 마구 두드려온다. 처음엔 분명 달랑 들어 올려지기만 했던 아더가, 이젠 본인이 발끝으로 포인트를 준다. 어떻게 하면 이 장면의 형제 케미가 가장 어우러지도록 비추어지는지 잘 알고 표현해내는 것이다. 시아준수는 이런다. 일견 소소한 장면까지도, 매일 세심하게 다듬어오고 어제보다 오늘 더 채워간다. 아무리 사소한 장면도 무대 위의 시아준수를 만나면, 전부 공들여 수놓는 결정적 순간이 된다. 이런 사람을 어떻게 사랑하지 않겠나요. 첫공부터 마지막 주까지 조금도 변하지 않고 매 순간 진심을 다하는 이 사람을.
〈그가 지금 여기 있다면〉 바위산에서 내려오기 편하도록 기네비어에게 내민 아더의 손. 나름의 배려였으나.. 마주 잡아주지 않고 손바닥을 톡 치고만 가는 기네비어의 등을 한 번, 그녀의 손가락이 스친 자신의 손바닥을 한 번. 그가 번갈아 보았다. 손을 살짝 들어 제 손바닥을 가만 보는 뒤통수가 그 찰나에 못 견디게 귀여웠다. 이 뒤통수를 오래오래 기억하자.
이어서 오늘의 새로운 멋짐(귀여움). 검 내리긋는 효과음이 바뀌었다. 그간의 훅, 슉 등에서 오늘은 푸슉! 두 음절이 되니 두 배가 된 귀여움. 객석 모두가 한마음으로 귀여워서 웃는 게 느껴졌다. 기네비어마저도.
〈왜 여깄어?〉 샤신민일 때 시아준수 소절이 시작되는 순간 귀에 이불이 덮어지는 느낌에 대해 바로 직전의 삼연공(10/29) 때 썼는데, 아니 오늘 무슨 일이었지. “한평생!”에 전에 없던 느낌표가 입혀졌다. 마치 어떤 쐐기를 박는 것처럼 강한 도입부를 들었다. 본래는 모르가나를 부드럽게 따뜻하게 감싸 안았던 목소리가 오늘은 이미 확고한 결의를 품고 있는 것처럼도 들렸다.
멀린인 아더의 〈이야기 되는 이야기 리프라이즈〉. 샤아더에게 물어봐 영상을 보고 난 후 가장 고대했던 장면. 모르가나와 절대 눈을 맞추지 않는다는 인터뷰 이후로 계속 기억 속의 모습만을 되새기다, 모르가나의 눈을 보지 않는 그를 실제로 보았을 때의 짜릿함이란.
내내 모르가나를 마주하지 않고 정면을 바라보던 것.
칼을 들고 자신을 향하여 다가오는 모르가나를 느끼자 서서히 고개를 추켜 올리며 시선이 자연스럽게 비껴가도록 하던 것.
두 팔을 벌려 죽음은 활짝 맞이하면서도 시선은 반드시 엇갈린 채로 두던 것.
어떻게 이렇게 세심할 수 있어요. 이 디테일에 관하여 상연 중에 듣게 되어 얼마나 다행인지. 종연 후에 알게 되어 기억으로만 되새겨야 했다면 얼마나 아쉬웠을지. 천만다행의 찬탄을 삼켰던 오늘.
〈오래전 먼 곳에서 리프라이즈〉 그간에는 쭉 기네비어의 손등 위에 이마를 깊이 묻어왔던 그가, 오늘은 고개를 숙이지 않았다. 그녀에게서 시선을 떼는 찰나도 아까워하는 것처럼 못 박힌 눈동자를 보았다.
미동 없는 눈이 유일하게 시선을 떨군 때는 딱 한 번.
‘여-기’ 우리의 사랑 기억하자 노래하며, 그 사랑의 징표인 반지를 내려다볼 때뿐이었다.
이 애틋한 시선이 마음 아파 그랬을까. 검 앞에 혼자 남겨지는 그의 뒤편으로 흐르는 한뜻 한맘의 고요한 노래가 유독 슬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