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적으로 좋은 공연이었다. 김준수, 김소향, 장은아의 조합일 때 공연을 관통하는 감정선이 있다. 사랑일 땐 사랑을, 증오일 땐 증오를 가감 없이 전달한다. 그것이 여실히 느껴진 공연이었다. 

 

〈변하지 않을 영원한 연대〉. 오늘 박자를 밀어 새롭게 부른 소절 하나, 자, 내 아버‘지이’처럼. 아무래도 오케스트라를 따라가며 음을 순간적으로 늘린 것 같지.

선심 써서 따라준 잔을 원샷하자 기특하다는 듯이 누나(?)가 그의 머리를 헝클어트렸는데 그만 머리카락 몇 가닥이 동그랗게 말려버렸다. 동물의 귀처럼 동그랗게 말린 머리카락은 넘버가 끝날 때까지 꿋꿋하게 살아남아 존재감을 과시했다. 몹시 귀여웠어. 

친구들에게로의 입술 앙다문 주먹 쨉쨉은 점점 격해진다. 토요일에도 있는 힘껏 도움닫기 점프를 하여 주먹을 날린다 싶더니, 오늘도!

그리고 오늘의 시야에서 처음 볼 수 있었던 것. 신부님이 등장하신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굳이 찾아보지 않아 위치를 전혀 몰랐는데, 아더가 케이에게 달려들 때 오두막 앞에서 조용히 성호를 긋고 계셨다. 분을 삭이고 진정하는 아더를 바라보는 염려 어린, 동시에 다정한 시선에 마음이 따뜻해졌다. 아더, 역시 사랑받고 있구나 싶어서.

 

〈이야기 되는 이야기〉

“원하는 게 뭡니까.”

들은 중 가장 단단한 음성을 들었다. 수상한 자와 아버지 사이로 끼어들며, 아버지 앞을 가리고 서는 듬직한 아들이었다.  

더불어 오늘도 “잠깐만, 내 이름을 어떻게 알죠?” 

잠깐만, 하고 짚었던 건 토요일 밤공의 순간적인 추임새 같은 것으로 생각했는데 대사가 수정된 걸까? 

 

“사실인가요? 제가 아버지의 아들이 아니라는 게?”

따져묻는 아들에게 차근차근 대답해주는 조원희 엑터의 연기가 좋았다. 일 년 후 네가 내게로 왔다. 집이 필요했던 아이, 나는 아무것도 묻지 않고 너를 키웠다. 평소와 크게 다를 바 없는 목소리였는데도 유난한 진심이 느껴졌다. 아더의 마음을 따라 나의 마음도 함께 녹았다.

“왜 여태 한 번도 말씀 안 하셨어요.”

풀어진 목소리가 아버지에게 다가서며 묻는데, 부자의 단란한 시간에 끼어드는 멀린이 반가울 리 없다. 대번에 뾰족해진 목소리로 그가 정색했다. 

“내가 왜 당신을 믿어야 하지?”

이 대목의 급변하는 톤마저도 너무나 좋은 것이다. 오디오 드라마에도 손색없는 연기 아닌가.

 

〈내 앞에 펼쳐진 이 길〉. 오늘따라 이 넘버가 왜 이렇게 감정을 건드렸는지 모르겠어. 용기를 내라며 스스로를 다독이는 주먹에, 멀린과 눈을 마주하고 고개를 끄덕이던 얼굴에, 바위산에 올라 저 바위를 정복하겠노라는 목소리에 울컥했다.

용기를 내, 정면을 홱 돌아보고 주먹 쥔 건 역시 토요일 밤공만의 특별한 제스처였던 걸로. 

 

〈그가 지금 여기 있다면〉. 김소향 기네비어와의 오랜만의 듀엣. 그리고 다시 보았지. 그녀가 그에게 손짓을 하고, 그가 귀를 기울이는 시늉을 하다가 두 사람, 고개를 마주하고 꺄르르 한 번에 웃음이 터지는 모습. 여기 이 장면, 마주한 얼굴에 나란히 웃음 터지는 이 모습을 너무나 좋아해. 

그리고 오늘, B에서 정말로 아름다웠던 장면. 노래가 막 두 사람의 듀엣으로 변해가려는 찰나였다. 저 멀리 기네비어가 보여준 방향을 그윽하게 응시하며 듀엣을 입혀가려는 그의 뒤로 바위산 위에 오른 그녀가 한 시야에 보였다. 선택받은 소년과 운명의 소녀가 대각선으로 나란한 시야. 소녀가 보여준 길을 바라보고 선 소년 뒤에, 바로 그 소녀. 오늘의 각도에서는 두 사람, 틀림없는 운명이었다. 맺어져야만 하는 필연의 인연임이 분명했다.

 

〈왜 여깄어?〉 2막에서 황홀한 ‘펜드라곤 남매의 닮은꼴 얼굴’이 오늘은 이 넘버에서도 등장했다. 버림받은 처지의 외딴 모르가나와 보살핌 속에 선 아더, 두 사람의 처지가 전혀 다른 데도 미간을 모으고 ‘여깄다’ 노래하는 순간만큼은 영락없는 남매였다. 흡사 착란과도 같은 닮은꼴의 감각, 몇 번을 겪어도 마법 같다.

 

〈기억해 이 밤〉. 아버지의 눈을 보았다. 두 손으로 아들의 망토를 받아들고, 검을 들고 선 아들의 늠름한 모습을 바라보는 아버지의 눈이 보였다. 

“우리 군사들의 용기에 있기 때문입니다.”

희망을 써내려가는 아들의 음성이 아버지의 눈에 촉촉한 파란을 일으켰다. 자연히 알 수 있었다. 저토록 따뜻한 시선의 아버지가 등 뒤를 지키고 서 있는 한은, 엑스칼리버를 향하여서도 운명을 향하여서도 큰 망설임 없이 나아갈 수 있는 아더의 마음을.

 

〈오래전 먼 곳에서〉. 그를 바라보는 김소향 기네비어의 표정을 보았다. 보자마자 울컥했다. 그렁그렁한 눈으로 감격에 차서 아더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하는 그 눈. 의심할 여지가 없는 사랑이 담긴 눈. 한 철의 꿈으로 끝난 사랑이라 해도 그 순간만큼은 진실하였음을 보았다. 그를 위하여 기뻤다. 나를 위하여 안도했다.

망토를 벗고 매무새를 정리할 때는 그의 머리에 안착해있던 금가루를 팔랑, 팔랑, 손으로 날려주었다. 상냥한 그녀.

 

오늘의 새로운 시아준수 모먼트. 앞머리가 신경 쓰였는지 검지로 머리를 넘기는 손동작을 두 번이나 보았다. 아더이기도 하면서 준수이기도 한 동작을 보면 기분이 묘해진다. 아아, 〈눈에는 눈〉에서는 손을 쓸 수 없으니, 고개를 젖혀 머리카락 넘기기를 시도하기도.

 

〈혼자서 가〉. 토요일 밤공의 시도, 대사를 밀어 드럼의 인트로와 맞추어보고자 하였던 노력이 완벽한 결실을 맺었다. 도입부를 완벽하게 맞추어냈어. 고조되는 드럼의 박자가 절정을 찍고 마무리를 밟는 순간 테이블을 쾅, 내려치며 그가 노래를 시작하는 모습을 보고 전율했다. 이 얼마만의 깔끔한 출발인지.

흥분에 가득 차 있는데 오케스트라의 변주는 새 개척지를 찾았다. 튀는 박자를 따라 그는 음절을 징검다리 건너듯 뛰어넘어야 했다. 

"원한-다면 검을 버려둘게, 어디 한 번 붙어보자.”

새롭다면 새롭고, 애드립이라면 애드립처럼 들을 수도 있겠으나 글쎄. 도무지 쉴 틈 주지 않는 오케스트라 덕에 그의 수고가 크다.

 

“감히 왕 앞에서 말할 땐.”

일갈한 그가 숨을 가다듬고 속삭이듯 경고했다. 어김없이 검지를 세워서.

“좀 더 조심해야 할 텐데.”

여기서 김소향 기네비어는 늘 황망한 눈으로 그의 검지를 바라본다. 한껏 치켜세웠다가 내려가는 그의 검지를, 망연자실한 눈으로 좇아간다. 말문이 막힌 상처받은 얼굴로.

 

〈이게 바로 끝〉. 장은아 모르가나와 그의 아더가 가장 닮은꼴을 이루는 넘버. 이 노래에 팽배한 착란의 감각, 짜릿하기까지 한 남매의 분노. ‘모두 거짓말, 사실 아냐.’ 부정하며 무너진 아더의 뺨을 감싸 쥐는 모르가나, 나란히 웅크린 펜드라곤 남매는 너무나 한 덩어리처럼 보였다.

하지만 가장 큰 배신은 혈육에게서 왔던 것을.. 랜슬럿과 기네비어를 향하여 검을 뽑아 들고 달려드는 그의 뒤로, 동생의 등을 떠미는 누이의 손을 보았다. 가늘고 긴 손가락이 파득파득 떨며 그를 부추기고 있었다.

 

이어 “멀린, 왜 나를 혼자 버려둔 거야.” 한없이 가냘팠던 토요일의 울음은 오늘, 다시 절규가 되었다.

 

〈왕이 된다는 것〉. 노래의 끝과 함께 그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비가 내리고 있었다. 힘겨운 싸움을 앞두고 날씨마저 우는 날이었다. 오른팔의 기사도 없이, 구멍 난 갑옷을 입고 전쟁터에 선 왕은 묵묵히 방패를 받아들었다. 왕이 된다는 것의 귀결이 되는 이 전쟁터.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서서 혼신을 다해 싸우는 그를 보며 느꼈다. 혼신의 연기도 혼신의 노래도 아닌 그저 혼신의 몸짓만으로도 얼마나 많은 것을 전할 수 있는가. 그의 아더는 얼마나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가능한 모든 것을 동원하여 스스로를 전달하는가.

 

〈평원에 날 묻어〉. 오늘의 가장 처절했던 대목은 랜슬럿을 눕히기 위해 무릎께에 놓인 검을 발끝으로 치워버리는 동작 가득했던 황망함에. 운명의 검이 아닌가. 한 사람을 왕으로 만들어낸 천년검이 아닌가. 그러나 그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시대의 성물을 망설임조차 없이 밟아서 밀어버리는 그에게 중요한 건 오직 하나, ‘형’을 온전히 눕혀야 한다는 것뿐. 진실된 절박함은 곧장 그의 눈물이 되었고, 전하지 못하는 ‘미안해’가 되어 홀로 남겨졌다.

 

그리고 오래전 먼 곳에서 리프라이즈. leaplis.com/580263

샤아더 사랑해. 

 

*

자, 내 아버‘지이’처럼

원하는 게 뭡니까

잠깐만.. 내 이름을 어떻게 알죠?

저 엑스칼리버 앞에 나 맹세하리

궁합도 볼 줄 알았어요?

원한-다면 검을 버려둘게, 어디 한 번 붙어보자

신은 날 택했어

감히 왕 앞에서 말할 땐, (검지) 좀 더 조심해야 할 텐데

무릎 꿇은 오래전 먼 곳에서 리프라이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