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16일의 화요일.
“황금별을 찾아 헤매다 그 빛에 타버려”
“왕자는 왕이 되었다네. 황금별도 주웠다네” 였잖아요. 아버지도, 어린 시절도, 사랑도 모두 다 잃었지만 그래도 “황금별은 주웠다”고 해줬잖아. 그런데 왜 이번에는 타버렸다고 하는 건데… 음악 하나만은 그의 죽음 이후에도 그의 곁에 남아주었던 초재연이었건만. 이번에는 그 무엇도 남지 않는다. 가족도, 사랑도, 음악도.
심지어 삼연의 그는 음악으로 살았던 걸 어느 때보다 후회하는 것만 같았다.
사실은 음악 이상으로 가족의 사랑을 갈구해왔음이 ‘왕자는 왕이 되었음에도 무얼 얻었나’ 되묻는 가사에서 느껴졌다.
삶의 마지막에서 걷잡을 수 없는 회한의 눈물.
빛나는 음악천재의 외피를 벗어던지고 인간적인 상처를 있는 그대로 낱낱이 드러내 보인 그에게서 눈을 뗄 수 없었다.
가여운 아이. 그의 청중만이라도 그를 조건 없이 사랑해야만 했다.
이 계절을 다 바쳐 그래야만 한다.
그럴 것이다.
6월 24일의 수요일.
마지막으로 심장에서 뜯어낸 음악. 눈높이까지 그것을 들어 올린 그가 가만히 주먹을 쥐었다. 하지만 손안에 담긴 마지막 악상이 망가질까 차마 세게는 쥐지 못했다. 달걀을 그러쥐듯이 오목하게만 굽힌 손을 그가 말없이 바라보았다.
황금별에 타버렸다 자조하는 마지막까지도 놓지 못하는 것. 이것을 위해 어린 시절, 누나, 아버지, 사랑까지 전부를 버렸지. 그러나 이에 대체 무슨 의미가 있었을까?
눈물로 얼룩진 얼굴이 연신 답을 찾고 있었다.
이를 위해 전부 내던진 나의 삶은 대체 무엇이었던 걸까.
이 운명 피한다 하여 피해지는 것이 맞았을까.
온갖 의문이 회오리치는 얼굴에 무엇 하나 또렷한 정답의 기색이 없었다. 오직 하나 확실한 건 임박한 죽음뿐. 아마데를 향하여 결심한 듯 팔을 벌리는 그를 보며 나는 익숙한 멜로디를 떠올렸다.
하지만 끝은 비극, 오직 캄캄한 암흑.
별이 낳은 찬란한 천재는 비극에 졌다.
6월 26일의 금요일.
누굴까? 가 계기였다면 혼란은 각성이었다. 최종장 모차르트! 모차르트! 에서 그는 완연하게 아마데를 두려움의 대상으로 인지하고 있었다.
두려움이라는 감각과 아마데의 존재감에 양쪽으로 짓눌리며 그가 할 수 있는 건 작곡에 매달리는 일뿐이었다. 레퀴엠을 적어 내려가는 악보는 그가 이 세상에 남아 붙들 수 있는 마지막 부표나 마찬가지였다.
이중의 중압에 시달리는 그는 어느 때보다 예민했고, 절박해 보였다. 한 손으로 살짝만 건드려도 그가 입자 단위로 산산이 깨져버릴 것 같다고 느낀 순간이었다.
아마데에게 악상을 끊임없이 속삭이던 그가 아예 악보를 낚아챈 것이.
아마데의 속도가 성에 차지 않는다는 듯이 직접 펜촉을 쥐었다. 직접 음표를 휘갈기기 시작하는 손이 전에 없이 급급했다. 건반을 두드렸던 손으로 악상을 적고, 그러다가도 재차 건반을 두드렸다.
적지 않으면 폭발할 것만 같은 일촉즉발의 영감들을 써내려가며 그가 희게 웃었다.
그때였다. 나의 울컥함이 한계에 도달한 때가.
별을 찾아 헤매던 제 생명력이 재가 되어가고 있음을 모르지 않을 터였다.
제 생명력은 소진되어 가는 중인데도 재능의 탐욕은 끝이 없다는 것 역시도 잘 알고 있을 그였다.
그런데도 악보를 빼앗아 직접 적어가는 그의 모습에서 보였다.
제 스스로의 삶을 사랑해왔던 그가.
자유와 영혼 찾아 혹자는 오만이라 부르는 용기로 세상을 유영했다. 그 시간들 속에서 천재로서 살았고, 음악으로 살았다. 사랑 앞에 음악을 두었고, 가족에 앞서 음악을 좇았던 지난날들에는 비록 지금은 부스러졌을지언정 반짝반짝한 행복들이 있었다.
그래서 죽음에 앞서 마지막으로 다시 한번 ‘나는 나는 음악’으로 분하는 그 순간은 그의 머리가 기억하고 마음이 따르는 본능이었다.
아름다웠다.
눈에도 보이지 않고 마음으로 느끼기에도 어려운 것.
본능, 의지, 운명….
그것이 두 눈에 아름답도록 비추어졌다.
볼프강 모차르트로서의 삶에의 의지, 곧 음악에의 사랑을 그 찰나의 순간에 표현해낸 시아준수가 눈 시리도록 아름다웠다.
7월 3일의 금요일.
영감을 건네는 손을 보았다. 손안의 형체 없는 그것, 원래는 깃털처럼 가볍게 통 통 던져주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아니다. 눈에 보이지 않아도 묵직하게 느껴지는 그것이 이제는 그의 두 손으로도 버거워 보였다. 무게감 느껴지는 손짓에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이전과 같지 않은 건 이뿐만이 아니었다.
원래는 아마데와 주거니 받거니 하며 호흡을 나누었던 그였지. 그러나 이제는 술에 의지해서만, 아마데가 깨울 적에만 가까스로 정신을 차리고 영감을 짜내는 그가 꼭 아마데의 아바타로 여겨졌다. 아마데의 의지가 그를 일으켜 세울 때마다 마음이 가라앉았다. 반짝반짝하던 그의 생명력은 어디로 갔는가. 흘러넘치는 재능을 웃으며 누리던 그는 어디 갔지?
입안이 썼다. 착잡했다.
바로 그때였다.
그가 악보를 빼앗아 들었다. 다급한 손길이 아이의 것을 낚아챘다. 그리고는 제 손으로 직접 음악을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아마데의 의지로만 움직이는 듯하던 그가 스스로의 의지를 입은 것이다.
본능적으로.
일생 음악으로 살아왔던 기억을 좇아,
필연적으로.
재능이 부여하는 역할에 함몰되기를 거부하고 오로지 스스로의 의지로 음악으로 분한 것이다.
어찌 울컥하지 않겠나.
어떻게 아름답다 느끼지 않을 수 있을까.
인간의 육신에 갇혀있던 영혼이 기어코 스스로 별이 되는 여기 이 지점.
이 대목에만 이르면 모차르트 너머의 시아준수가 이렇게나 선명한데.
7월 12일의 일요일.
최후의 나는 나는 음악과 함께 그가 천천히 손을 들어 올렸다. 그 안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텅 빈 손을 잠시 바라보던 그가 손을 그대로 심장께로 가져갔다. 생의 마지막 박동을 향해 달려가는 심장에서 최후의 음악을 꺼내 들었다.
마지막 악상을 그는 한동안 들고 있었다.
주먹 안에 가두지도, 힘주어 그러쥐지도 않았다. 손안에 올려둔 채로 가만히 바라만 보는 동안 음악은 자유분방하게 세상 속으로 흘러 들어갔다. 때로는 경쾌하게, 때로는 섬세하게. 그가 살아온 모습을 따라 음악이 춤을 추며 그를 떠나갔다.
그리고 끝내 그의 손안에 머무르는 음악이 조금도 남지 않았을 때.
심장에서 꺼낸 마지막 음악까지 전부 세상 안에 털어버리고 나서야.
그가 손을 그러쥐었다.
음악으로서의 자신도, 천재의 외피도 말끔하게 털어낸 맨손으로 꽈악 주먹을 쥐었다.
음악으로 인해 잃어야 했던 모든 것들을 향한 애도이자,
음악으로 살아온 날들을 스스로 매듭짓는 순간이었다.
7월 16일의 목요일.
오른쪽 어깨였다. 지친 어깨에서 일렁일렁 연기가 피어났다. 두 눈을 의심했지만, 보고 또다시 보아도 어깨에서 일어나는 연기는 사라지지 않았다. 아지랑이 같기도 하고, 영혼의 아우라 같기도 한 그것은 쉬지 않고 피어났다. 영혼이 산화하는 장면을 실제로 목격한다면 이럴까. 충격적일 정도로 아름다운 광경이었다. 동시에 기가 막혔다. 세상의 어느 누가 전심이라는 무기 하나로 제 몸에서 연기까지 피워낼 수 있다는 말인가. 보면서도 쉬이 믿을 수 없었다.
나는 난, 음악. 최후의 음악까지 모두 흘려보낸 그가 꼬옥 주먹을 쥐었다. 얼굴에는 눈물을 가득 달고, 어깨에는 아지랑이를 지고. 노래는 멎었으나 울음은 멎지 않았다. 천천히 숨을 삼키던 그가 결국 노래 안에 다 싣지 못한 울음을 마저 터트려냈다. 아이의 것처럼 으앙, 단말마에 터져 나온 울음과 함께 상체가 앞으로 고꾸라졌다. 이제 더는 버티고 앉을 기력도 없는 듯이.
그간에는 늘 그의 마지막이 안타까웠지. 오늘은 그를 어서 보내주고 싶었다. 그간의 여정을 함께한 관객으로서, 치열했던 그의 삶은 내가 모두 기억하고 있으니 당신은 이제 쉬어도 되노라고, 한시바삐 안식으로 떠나보내고 싶었다.
영혼의 마지막 조각까지 탈탈 소진해버린 그를 더는 세상에 붙잡아 둘 수가 없었다.
7월 23일의 목요일.
7월 24일의 금요일.
나는 나는 음악 리프라이즈. 서두르지도 몰아치지도 않았다. 조곤조곤 호흡하듯 써 내려가는 노래는 대번에 7월 16일을 떠올리게 할 만큼 섬세했다. 동시에 가녀리면서도 청아했다. 가루처럼 고운 목소리가 그 옛날 어린 시절의 나는 나는 음악을 되살려왔다. 아름다울 정도로 수미쌍관을 이룬 목소리였다.
긴 세월 동안 풍파에 지치고 꺾였으나, 그의 본질을 이루는 ‘음악’이라는 영혼은 낡지도 닳지도 않은 처음 모습 그대로였다. 그것을 보았다.
7월 26일의 일요일.
악보를 피아노 위로 날리는 손이 굉장히 매몰찼다. 차갑고도 단호한 동작에 종이가 내쳐지듯 날아갔다. 이런 모습은 처음이라 갸웃하는 데 이어지는 나는 나는 음악 리프라이즈도 오늘은 전혀 달랐다.
목소리부터.
강하고 짙은 음성. 바로 이전의 24일에 들려주었던 청아하고도 맑은 목소리와는 정반대의 것이었다. 한음 한음 꾹꾹 눌러서 채워 넣는 노래가 떨고 있었다. 울음이 아닌 울분으로.
친구는 그에게서 ‘한’을 느꼈다 했다. 동의한다. 그의 생을 통틀어 응축된 감정이 ‘한’으로 화하여 노래 안에 나부끼고 있었다.
동시에 ‘한’으로는 포괄할 수 없는 감정도 있었다. 그것은 훨씬 원초적인 감각이었다.
이를 악물고 눈썹을 일그러트리는 얼굴의 그는..
죽음을 앞둔 오늘의 그는 분해 보였다.
자신의 죽음을 인정하고 싶지도, 받아들일 수도 없는 것 같았다.
노래가 마디마다 전하고 있었다.
이렇게 죽을 수는 없어.
심장에서 마지막으로 뜯어낸 영감이 손안에서 전부 빠져나갈 때까지 그대로 두는 얼굴은 원망하고 또 회한했다.
이 생에의 미련을 온몸으로 표현하는 그는 처음이었다.
낯선 하루였다.
8월 2일의 일요일.
모차르트! 모차르트! 작곡하며 거의 울면서 뽑아내던 영감. 중압에 짓눌려 더딘 손으로 악상을 전해주면서도 질린 얼굴. 얼마나 더 주어야 만족하겠니, 묻는 듯하던 우는 눈이 사실은 알고 있었다. 얼마를 더 준다 한들 만족하지 않겠지. 아마데를 사랑스럽게 여기던 시절은 끝났다. 끝모르는 탐욕이 그의 숨통을 조여오고 있었다.
이를 악문 그가 아마데로부터 깃펜을 낚아채듯 앗아 들었다. 매섭게 빛나던 아이의 눈이 그제야 재촉의 고삐를 늦추었다. 아득바득 휘갈기는 그의 등 뒤에서 아이가 그제야 웃었다. 포식자처럼 배부르게 웃는 아이를 등진 채로 그는 떨었고, 또 울었고, 그러면서도 버텼다. 버티고 버티며 애를 썼다. 그러나 결국 늘어지고 마는 어깨.
스러져가는 그의 육신 너머로 재능이 다시금 눈에 날을 세우기 시작했다.
기다렸다는 듯이.
모차르트의 죽음. 아마데는 말을 하지 않는다. 마이크도 차지 않는 아이에게는 대사 한 줄 없다. 그러나 오늘의 아마데는 소리로도 연기했다. 말을 할 수는 없으니 몸을 써서. 팡, 팡. 두 주먹으로 피아노 의자를 아이가 연신 내리쳤다. 피아노에 기댄 그가 제 성화에 미동도 하지 않자 깃펜을 빼앗아 직접 써보았지만 고갈된 악상. 나오는 것이 없자 이번에는 두 손과 깃펜을 모두 써서 불만을 표했다.
팡, 팡, 팡. 전에 없는 소리였다. 지난 20일 동안 그 누구도 이런 성화를 부리지 않았다. 어떤 아마데도 소리까지 동원하여 여봐란듯이 그를 압박하지 않았다. 유난하게 빗발치는 성화에 그가 움찔대며 떨었으나 그뿐이었다. 남은 기력으로는 이제 뜻대로 운신하는 것조차 버거워진 탓이다. 그 모습을 보고도 아이는 멈추지 않았다.
팡, 팡, 팡.
재촉하는 소리가 마치 임종을 알리는 종소리처럼 고요한 공간을 두드렸다.
실로 끔찍한 장면이었다.
탐욕을 내려놓지 않는 아마데와 꺼져가는 볼프강. 사랑해 마지 않았던 음악이 그를 집어삼키는 광경은 잔인하리만치 적나라했다.
시각적으로도 청각적으로도 온통 그를 몰아세우는 것뿐인 공간. 사실적인 동시에 극적이었고, 그래서 끔찍했다.
당사자인 그는 오죽했을까.
“나는, 난, 음악…”
행복의 정점에서 불렀던 노래가 울음이 되었다. 마지막 음절은 쉽게 맺어지지도 못한 채 늘어졌다. 길게 늘어지며 왈칵 울음을 입은 음성에서 온갖 감회가 끓어올랐다. 회한, 자조, 후회, 서러움, 울분, 분노, 그리고 두려움.
“나는 내 자신 모든 걸 다 바쳤네, 또 주었네. 내 어린 시절, 그리고 나의 누나, 내 아버지, 나의 사랑.”
제 손으로 놓아버린 하나하나를 꼽으며 그가 숨을 삼켰다. 웅크린 그대로 흘긋 눈동자만 굴려 아마데를 보았다. 유난히 움츠러든 모습이 가여웠다. 슬쩍 아이의 동태를 살피는 그의 모습은 꼭 눈치를 보는 것 같았다. 언제 다시 아이가 손을 팡팡 두드려댈지 몰라 불안한 사람처럼 보였다.
아이는 자신보다 한참이나 작지만 어느 사이에 제 위로 그림자를 드리우는 존재가 되었다. 아마데의 그늘 하에 덩그러니 놓인 제 처지를 실감하는 등이 파르르 떨렸다. 명백하게 예감하고 있었다. 모든 걸 삼켜버린 재능이 이제 마지막 남은 하나를 원하고 있다는 걸.
“그리고…”
자신을 내어줄 수밖에 없다는 것 또한.
마지막 남은 힘을 그러모아 그가 두 팔을 벌렸다. 품 안에 들어온 아이를 향해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너는 곧 나이고, 나는 곧 너.
섧은 울음으로 그가 체념의 웃음을 그렸다.
한 명의 사람으로 자유롭게 살고자 했던 천재가 끝내 재능이라는 화마로 투신하는 순간이었다.
8월 5일의 수요일.
“나는 박자, 나는 쉼표” 까지 닿았을 때였다. 아득하게 멀리 보는 시선이 길었다. 죽음이 임박하여서는 삼라만상이 스쳐 간다 하지. 딱 그 순간임을 저 먼 곳에 둔 시선에서 알 수 있었다. 볼프강, 지나온 삶을 돌아보고 있구나. 살아온 시간들이 하나하나 빠르고도 아프게 스쳐 가고 있구나.
그중 무엇 하나라도 그를 웃음 짓게 하는 순간은 없었을까.
공허하여 그렁그렁할 뿐인 눈에서는 원하는 대답을 얻을 수 없었다.
8월 7일의 금요일.
마지막 순간. 2일에 이어 오늘도다. 오늘도 이시목 아마데를 한 번에 돌아보지 못했다. 몸을 한껏 움츠린 채 고개만 살짝 틀어 아마데의 동향을 먼저 살폈다. 흘긋이는 시선으로 아이가 거부할 수 없는 지척까지 다가왔음을 인지한 후에는 마지못해 숨을 골랐다. 꿀꺽, 무거운 숨을 넘겨 각오를 삼키고 어정어정 더디게 몸을 틀었다.
아마데에게로, 죽음에게로.
“그..리..고..”
두 팔 벌려 아이를 맞이하는 세 음절에 오랜만에 물기가 가득했다. 동시에 음절의 층층에서 두려움이 진득하게 묻어났다.
끝까지 재능이 이끄는 대로 살아왔음을 부정할 수 없다. 그런데, 이것으로 끝이 맞을까?
울음으로 떨리는 음성이 그렇게 묻는 것만 같았다.
끝내 자신을 삼켜버린 재능에게서 죽음 이후에는 해방될 수 있는 걸까?
선뜻 부정도 긍정도 할 수 없어 두려움 가득한 눈이 내가 목격한 그의 마지막 눈빛이었다.
8월 8일의 토요일.
8월 5일에의 대답
시작부터 물기가 저벅저벅했다.
“내 혀끝에 죽음의 맛이..”
잘바닥대다 못해 소금기가 감도는 음성이었다. 울음으로 늘어지는 탓에 아이 같은 목소리이기도 했다.
“나는 박자 나는 쉼표 나는 하모니..”
5일에는 아득히 저 먼 곳을 바라보았지. 시선을 들어 저 멀리를 길게도 바라보았었다. 살아온 시간들을 하나하나 꼽아보는 서글픈 시선이 참 슬펐다. 오늘의 눈동자는 그때와는 달리 금세 후두둑 떨어졌다. 그 심경의 변화를 좇기 위해 숨죽이는 찰나, 그의 얼굴 가장 밑바닥에서 일그러진 입꼬리가 미약하게 웃음을 그렸다. 두 눈을 깜빡이는 사이에 사라진 미소는 마지막 영감을 꺼내는 순간 전에 없이 화사하게 돌아왔다.
“난 포르테 난 피아노 춤과 판타지”
마지막 악상을 틀어쥔 제 손에 시선을 단단히 박아둔 채 그가 웃었다.
입꼬리를 올려 부드럽게. 가냘프게. 어여쁘게.
“나는, 난, 난, 음악…”
웃으며 울었고, 울면서 웃었다.
음성은 잔뜩 울먹울먹한 데, 웃음을 품은 얼굴은 어쩐지 맑아 보이기까지 했다. 회한하기보다는 순응한 듯한 오늘의 얼굴에는 슬픔은 있어도 원망은 없었다.
그 모습은 마치 5일의 그를 향하여 건넸던 질문에 대한 대답을 들려주는 것 같았다.
5일의 그에게 질문했던 것. 저 먼 곳을 바라보며 살아온 시간들을 하나하나 빠르고도 아프게 곱씹는 그에게, ‘ 그중 무엇 하나라도 당신을 웃음 짓게 하는 순간은 없느냐’ 하였지. 그러나 대답을 듣지 못했다. 대답할 여력조차 없는 심신이 쫓기듯 져버렸었다.
그날을 대신하여 오늘의 그가 답해주었다. 마지막 순간 마지막 악상을 바라보며 웃는 얼굴로.
‘여한은 없다.’
제 삶의 막다른 지점을 예감하고 기꺼이 슬퍼할지언정, 음악으로 살아왔던 일평생을 결코 후회하지 않았다.
그래서였다.
후회는 없기에, 오늘의 그는 흔쾌히 갔다.
모든 것을 불사른 사람만이 지어 보일 수 있는 아프고도 개운한 얼굴을 하고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