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문화사 14p.
이 젊은 아도니스는 마치 상아와 장미 꽃잎으로 빚은 것 같잖아?
 
동서문화사 22p.
사색의 나날에 깃든 형상의 꿈. 도리언 그레이가 나에게는 바로 그런 존재야.
 
문예출판사 23p.
"그건 그렇고, 도리언 그레이에 대해서 좀 더 말해보게. 그를 얼마나 자주 보나?"
"매일. 하루라도 그를 보지 않으면 마음이 편치 않아. 그는 이제 내게 없어서는 안 될 존재거든."
"정말 놀랍군! 자네는 예술 말고 그 무엇에도 관심이 없는 줄 알았는데."
"이제 그가 내 예술의 전부야."
화가가 진지하게 말했다.
 
문예출판사 18p. 
우리의 눈이 서로 마주쳤을 때, 나는 내 얼굴빛이 창백해지는 게 느껴지더군. 순간 이상하게도 공포감이 엄습했어. 그의 존재만으로도 얼마나 매력적이던지, 내가 만약 용납한다면 내 모든 본성과 내 모든 영혼과 내 예술 자체를 완전히 흡수해버릴 것 같은 어떤 인물과 마주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던 거야. 나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어떠한 외부의 영향도 받고 싶지 않았어. 해리, 내가 천성적으로 얼마나 독립적인 인간인지는 자네도 잘 알 거야. 내 주인은 언제나 내 자신이었어. 적어도 도리언 그레이를 만나기 전까지는 그렇게 살아왔어.
 
문예출판사 25p.
"왜냐하면, 그럴 의도는 없었지만, 내가 이와 같은 온갖 기묘한 예술적 숭배를 그 초상화에 상당히 표현했기 때문이야."
 
동서문화사 23p.
"난 그에게서 모든 것을 본다네. 난 모든 곡선에서 그를 느끼고, 모든 색채의 아름다움과 미묘함에서 그를 발견하지."
 
문예출판사 32p.
헨리 경은 도리언을 바라보았다. 섬세하게 곡선을 이룬 진홍빛 입술, 해맑고 푸른 눈동자, 곱슬곱슬한 금발 머리카락, 정말 그는 놀랍도록 잘생긴 젊은이였다. 그의 얼굴에는 보는 즉시 그를 신뢰하게 만드는 뭔가가 깃들어 있었다. 젊은이 특유의 열정적인 순수함은 물론이고 젊은이 특유의 솔직함이 느껴졌다. 그가 세상사에 물들지 않고 자신을 지켜왔음을 누구라도 느낄 수 있었다. 바질 홀워드가 그를 숭배한다고 해서 놀랄 일은 아니었다.
 
문예출판사 48p.
"난 아름다움이 시들지 않는 모든 것을 질투해요."
 
동서문화사 38p.
"아, 얼마나 슬픈 일인가!" 도리언 그레이는 자기 초상화에서 시선을 떼지 못한 채 중얼거렸다. "얼마나 슬픈 일이란 말인가! 나는 늙어서 무섭고 흉측한 모습으로 변하겠지. 하지만 이 그림은 언제까지나 젊음을 잃지 않고 남아 있을 것이 안기가! 6월의 이 유별한 오늘 이상으로 결코 더 늙지 않을 테지..... 그 반대라면 얼마나 좋을까! 난 영원히 젊은 상태로 있고 그림이 늙어 간다면! 그걸 위해서라면ㅡ그럴 수만 있다면ㅡ난 뭐든지 다 내줄 거야! 그래, 이 세상의 그 무엇이든! 내 영혼마저 내줄 거야!"
 
39p.
"난 영생의 미를 지닌 것이면 무엇이든 질투를 느껴요. 당신이 그려낸 내 초상화에도 질투를 느끼고요. 내가 잃을 수밖에 없는 것을 저 초상화는 왜 계속 가질 수 있는 거죠? 흘러가는 순간순간이 나에게서 중요한 것을 빼앗아 저것한테 주겠지요. 아, 정말 그 반대가 될 수 있다면! 그림이 변하고 나는 지금 이 모습대로 영원할 수 있다면! 왜 이런 그림을 그린 거죠? 이 그림은 언젠가 나를 비웃을 겁니다. 무섭도록 나를 조롱할 테지요!" 그의 눈에는 뜨거운 눈물이 고였다. 홀워드의 손을 뿌리친 그는 소파에 몸을 던지더니 기도라도 하는 듯 쿠션에 얼굴을 묻었다.
"이렇게 된 건 자네 탓이지, 해리" 화가가 비탄에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 헨리 경이 어깨를 으쓱 했다. "이것이야말로 진짜 도리언 그레이의 모습이야. ㅡ그것뿐이라고."
 
동서문화사 67p.
"자네 같은 사람ㅡ생의 광채를 좌지우지 할 수 있는 사람ㅡ은 범죄를 저지르지 않는다네, 도리언,"
 
동서문화사 97p.
"그리고 도리언, 다시 말하지만 자네는 앞으로도 항상 나를 좋아하게 될 거야. 난 자네가 용기가 없어 저지르지 못한 모든 죄악을 다 체현해보도록 하겠어."
 
문예출판사 129p.
"나도 쾌락이 무엇인지 알아요." 도리언 그레이가 큰 소리로 말했다. "그건 누군가를 숭배하는 일이지요."
 
동서문화사 94p.
"저는 시에서 사랑을 발견하고, 셰익스피어 연극에서 아내를 찾았어요. 셰익스피어한테서 말하는 법을 배운 입술이 내 귀에 그 비밀을 속삭였어요. 난 로잘린드의 품에 안겨, 줄리엣의 입술에 키스를 했답니다."
 
동서문화사 77p.
"내가 그 사람을 사랑하는 이유는 있어. 그 사람은 이상적인 '사랑' 그 자체의 모습을 하고 있기 때문이야."
 
동서문화사 106p.
도리언은 소파에 몸을 던지더니 얼굴을 외면하며 중얼거렸다. "당신은 내 사랑을 죽이고 말았어."
 
동서문화사 107p.
그녀는 그의 발아래 몸을 던지더니 짓밟힌 꽃잎처럼 그대로 웅크리고 있었다. 상처 입은 짐승처럼 바닥에 웅크리고 있는 그녀를 도리언 그레이가 그 아름다운 눈으로 내려다보고 있었다. 윤곽이 또렷한 그의 입술이 절묘한 멸시로 일그러졌다.
 
동서문화사 109p.
침실 문 손잡이를 돌리던 도리언의 눈길이 베질 홀워드가 그려준 자신의 초상화에 가서 멎었다. 그는 흠칫 놀라서 뒤로 물러섰다. 그러다가 자기도 모르게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으면서 방 안에 들어섰다. 코트 버튼홀에 꽂힌 꽃을 떼어낸 뒤 그는 잠시 머뭇거리는 것 같았다. 마침내 그는 다시 그림이 있는 곳으로 다가가서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크림색 비단 블라인드를 겨우 뚫고 들어온 희미한 빛 속에 드러난 초상화의 얼굴은 어딘가 달라져 있었다. 표정이 예전과 달랐다. 다른 사람이 보았다면, 입가에 은근한 잔인함이 배어 있다고 말했을 것이다. 아무리 봐도 이상했다.
그는 다시 돌아서서 창가로 가 블라인드를 올렸다. 밝은 새벽빛이 홍수처럼 방 안으로 쏟아지면서 방 안에 머물러 있던 환상적 어둠이 먼지 날리는 구석으로 쫓겨나 그곳에서 전율하듯 파르르 떨었다. 그런데 그가 아까 보았던 초상화의 얼굴 표정이 아직 사라지지 않은 채, 더욱 선명해진 느낌조차 드는 것이었다. 화살 같은 눈부신 햇살이 입 주위의 잔인한 선을 또렷하게 비춰내고 있었다. 마치 그가 어떤 끔찍한 일을 저지르고 난 뒤 거울을 들여다보는 것 같았다.
도리언은 얼굴을 찡그리며, 테이블에서 상아 큐피드 상에 끼워넣은 타원형 거울을 집어들었다. 헨리경이 준 선물 가운데 하나였다. 얼른 그 반들반들한 표면 속을 들여다본다. 그의 붉은 입술을 뒤틀어 놓은 그런 선은 없었다. 그렇다면 이게 무슨 일인가?
그는 눈을 비비고 초상화에 더 가까이 다가가 다시 한 번 잘 살펴보았다. 뭔가 손질이 가해진 흔적은 전혀 없었지만 전체적인 표정은 틀림없이 변해 있었다. 그것은 단순한 그의 환상이 아니었다. 섬뜩할 정도로 또렷했다.
 
동서문화사 110p.
하지만 저 그림은? 저 그림에 대해선 뭐라고 말할 수 있을까? 저 그림은 그의 삶의 비밀을 간직하고 있고 자신의 역사를 얘기해 준다. 자신의 아름다움을 사랑하라고 가르쳐 준 것은 저 그림이다. 그런 그림이 자신의 영혼을 혐오하는 것도 가르쳐 주려는 것일까? 
 
동서문화사 126p.
한 순간 그는 자신과 이 초상화 사이에 존재하는 무서운 공명 관계가 사라지게 해달라고 기도할까 생각했다. 그의 기도에 대한 응답으로 이 그림이 변했다면, 다시 기도하면 그 응답으로 더 이상 변하지 않고 그대로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러나 인생에 대해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누가 영원한 젊음으로 남을 수 있는 기회를 포기하겠는가?
 
동서문화사 126p.
이 초상화는 그에게 가장 마법적인 거울이 될 것이다. 그 거울이 그의 육체를 비춰주었듯이 앞으로는 그의 영혼을 보여줄 것이다. 그래서 이 그림에 겨울이 찾아와도 그 자신은 여름의 입구에서 몸을 파르르 떠는 봄으로 남아 있을 수 있다. 그림 속 얼굴에서 핏기가 사라지고 납처럼 무거운 눈과 생기 없는 창백한 얼굴로 변해도, 살아 있는 그는 소년시절 그대로의 아름다움과 빛나는 매력을 간직할 것이다. 자랑스럽게 핀 그의 아름다운 꽃은 한 송이도 시들지 않을 것이다. 그의 생명의 맥박은 한 박자도 약해지지 않을 것이다. 그는 그리스 신처럼 언제까지나 강하고 날쌔고 기쁨에 넘치는 존재가 될 것이다. 그러니 캔버스 위에 물감으로 그려 놓은 그림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든 그게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그는 영원히 안전할 것이니, 그러면 된 것이다.
도리언은 미소 지으면서 스크린을 다시 그림 앞에 쳐 놓고 하인이 기다리고 있는 침실로 들어갔다. 
 
동서문화사 117p.
"당신 편지요? 아, 예, 기억납니다. 사실 아직 읽지 못했어요, 해리. 그 안에 혹시 내가 싫어하는 내용이 들어 있을까 싶어서요. 당신은 짤막한 경구로 인생을 산산조각 내는 데 선수잖아요."
 
동서문화사 120p.
도리언은 미간을 찌푸렸다. "그런 설명은 싫어요, 해리. 그렇지만 당신이 저를 무정한 사람으로 생각하지 않는 건 다행이군요. 전 그런 사람은 아니니까요. 하지만 이번 사건이 저에게 생각보다는 심하게 영향을 끼치지 않은 건 인정해야겠군요. 저는 이번 일이 어느 멋진 연극의 멋진 결말이라는 정도로밖에 생각되지 않아요. 정말이지 그리스 비극 같은 잔인한 아름다움이 있어요. 제가 그 속에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맡았으면서도 전혀 상처를 입지 않은 그런 비극 말이에요."
"그건 흥미로운 문제로군." 헨리 경이 말했다. 그는 이 젊은이의 무의식적인 자기중심주의를 유희하는데 더없는 쾌감을 느끼고 있었다.
 
동서문화사 128-129p.
"그만 하세요. 벌어진 일은 벌어진 일이고, 과거는 과거일 뿐이라고요."
"어제를 과거라고 하나?"
"실제로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가는 상관없잖아요? 하나의 감정을 지우는데 1년이나 걸리는 건 오로지 어리석고 천박한 인간일 따름이에요. 자기 자신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은 쉽게 기쁨을 창조하는 것처럼 슬픔도 쉽게 끝낼 수가 있지요. 난 내 감정에 좌우되고 싶지 않아요. 오히려 그 감정을 이용하고 즐기고 지배하고 싶다고요."
 
동서문화사 130p.
도리언이 홀워드를 향해 돌아서며 소리쳤다. 
"뭘 원하는지 모르겠단 말예요. 대체 원하는 게 뭐죠?"
"내가 초상화를 그려 줬던 그 도리언 그레이를 원하네." 
홀워드가 비통한 목소리로 말했다.
"베질." 도리언은 화가에게 다가가 그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너무 늦게 오셨어요."
 
동서문화사 132p.
"우리 서로 입씨름은 그만해요. 지금의 내가 진짜 나예요. 그 밖에는 더 할 말이 없어요."
 
동서문화사 141p.
아름다움은 손상되고 기품은 가루가 되어 떨어질 것이다. 죄악은 이 그림을 더럽히고 치욕스러운 존재로 바꿔놓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데도 이 그림은 계속 살아 있다. 영원히 살아 있을 것이다.
 
동서문화사 138p.
젊은이는 잔물결처럼 웃음을 터트리면서 말했다.
"해리는 낮에는 믿을 수 없는 말만 하고, 저녁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만 하는 사람이죠. 나도 바로 그런 삶을 살고 싶어요."
 
동서문화사 137p.
"...도리언, 내가 한 말 때문에 화를 내지는 말아주게. 해리한테도 말했지만 자네는 마땅히 숭배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야."
도리언 그레이는 길게 숨을 토해냈다. 그의 뺨에는 다시 혈색이 돌아오고 입가엔 미소가 어려 있었다. (....) 그는 자신에게 이런 생소한 고백을 한 화가에게 한없는 연민의 정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동시에 이 화가처럼 자기 자신도 어느 친구의 매력에 이토록 지배당하는 일이 있을지 궁금했다.
 
동서문화사 139p.
그 화가의 터무니없는 질투와 맹목적인 애정, 도에 넘친 찬사, 그리고 이해할 수 없는 침묵ㅡ그는 모든 걸 이해하게 되었고, 죄송스럽기도 했다. 이렇게 로맨스로 채색된 우정은 어딘가 비극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동서문화사 142p.
내가 그 그림 속에서 보았던 질책과 비난에 비하면, 시빌 베인 사건에 대한 베질의 비난은 얼마나 가벼운 것인가! 얼마나 가볍고 하찮은 것인가! 도리언 자신의 영혼이 캔버스 속에서 그를 응시하면서 그에게 판단을 요구하고 있었다. 도리언의 얼굴에 고통스러운 표정이 떠오르더니, 그 화려한 장막으로 그림을 덮었다.
 
 
*
여기까지 타락의 전주. 이후부터는 본격적인 질주:
162p.
169p.
176-7p.
191p.
193p.
202p.
217p.
248p.
251p.

댓글 '77'

송이

16.04.05

그나저나요, 책들은 다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인데 뮤지컬은 왜 도리'안' 그레이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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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꽃

16.04.05

오스카 와일드도 '장밋빛'으로 19세기성을 드러낸다. 19세기는 장밋빛이 아니고서는 극한의 아름다움을 표현할 수 없었던 걸까. 이들이 전부 두 세기만 늦게 태어나 시아준수를 알았다면, 장밋빛은 복숭앗빛이 되었겠지.

송이

16.04.05

그레이(gray)라는 도리언의 성도 그의 비극적인 생을 암시한 장치였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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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꽃

16.04.05

도리언의 삶이 비극적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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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꽃

16.04.05

초반에 헨리 경이 도리언을 만나기도 전에 그를 가늠하여 한 말이 정확했던 것 같아요. 문예출판사와 동서문화사를 교차하여 말하면, 머리가 텅 빈 아름다운 피조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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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꽃

16.04.05

그의 삶은 그가 타고난 대로의 결과였을 뿐.

송이

16.04.05

헨리 경은 넘나 신랄하고요(님도요). 무책임하기도 하죠! 도리언을 악의 소굴로 이끌어놓고 정작 자긴 자신의 영향력이 일으킨 결과에 대해선 전혀 상상도 못하고요! 불을 지핀 헨리가 나쁜거 맞고요?!

송이

16.04.05

헨리 경이 정원으로 나갔다. 그리고 도리언 그레이가 아주 멋진 라일락꽃들 사이에 얼굴을 파묻고 마치 와인을 정신없이 마시듯 꽃향기를 들이마시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헨리 경은 도리언에게 다가가 그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자네, 아주 제대로 하고 있군." 헨리 경이 나지막이 말했다.

"영혼만이 감각을 치유하듯 감각만이 영혼을 치유할 수 있는 거라네."

송이

16.04.05

이 문단 마지막 문장요. 악의 문장입니다. 헨리가 다 나빴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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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꽃

16.04.05

꽃잎 사이에 얼굴을 묻고 향기를 와인처럼 마시는 샤리안 만날 수 있나요?

악의 문장을 주문처럼 되뇌이는 샤리안도 만날 수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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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꽃

16.04.05

철없는 미소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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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꽃

16.04.05

마음에 들었던 장면:
문예출판사 44p.
"그레이 군, 나를 만나서 기분이 좋은가 보군." 헨리 경이 도리언을 바라보며 말했다.
"맞아요, 지금 난 아주 즐거워요. 앞으로도 항상 즐거울 수 있을까요?"
"항상이라고! 그건 정말 끔찍한 말이야. 난 그 말을 들을 때면 몸서리가 나. 그 말은 여자들이 즐겨 쓰지. 여자들은 로맨스를 영원히 지속시키려고 애쓰는 바람에 모든 로맨스를 망치고 말아. 영원이란 말은 의미 없는 단어이기도 해. 변덕과 일생의 열정 사이의 유일하게 다른 점이 있다면, 그건 바로 변덕이 좀 더 오래 지속된다는 거야."
도리언 그레이는 헨리 경과 함께 화실에 들어서면서 그의 팔에 손을 올려놓았다. "그럼 우리 사이의 우정이 변덕을 부리게 하죠." 그는 자신의 대담함에 얼굴을 붉히며 나지막이 말했다. 그리곤 이내 단상에 올라 다시 자세를 취했다.

송이

16.04.05

우리 사이의 우정이 변덕을 부리게 하죠 ㅋㅋ 명문장이었습니다.

송이

16.04.05

전 이부분도 좋았음

도리언 그레이는 젊은 그리스의 순교자 같은 모습으로 단 위에 올라가서 헨리 경을 향해 약간 불만인 듯 새침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오! 해리, 난 너 때문에 골치 아파 죽겠구나. 넌 왜 우리 멋진 도리언 그레이 씨에게 이스트엔드에서 하고 있는 자선 활동을 그만두라고 설득하려는 게냐? 도리언 씨는 우리에게 꼭 필요한 사람이야. 사람들은 그의 연주를 무척 좋아할 거다."
"전 도리언이 저를 위해 연주하길 바라거든요." 헨리 경이 미소를 지으며 큰 소리로 말했다. 그러곤 식탁을 내려다보며 자신의 말에 응답하는 환한 눈빛을 포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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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꽃

16.04.05

귀여웠던 장면:
104p.
"그만 가세요, 해리!" 도리언이 소리쳤다. "혼자 있고 싶어요, 베질, 당신도 가세요. 아! 내 가슴이 찢어지는 거 모르세요?" 그의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솟았다. 입술이 떨리는가 싶더니 객석 뒤로 달려간 그는 얼굴에 두 손을 파묻고 벽에 기대섰다.

119p.
"그런데 그 무서운 밤이 찾아온 거죠. 그게 정말 겨우 어젯밤이었나요? 시빌이 연기를 그렇게 못해서 제 가슴이 찢어질 것만 같았던 밤이?"

송이

16.04.05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송이

16.04.05

떼어서 봐도 귀여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시빌이 연기를 그렇게 못해서 가슴이 찢어진 도리안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송이

16.04.05

그런데 말예요. 살인을 저지른 걸 빼면 도리언이 어떤 타락을 했으며 어떻게 제 주변 사람을 모조리 타락시켰는지 너무 두루뭉술하지 않나요? 베질의 대사로 유추해볼 수 있을 뿐이잖아요. 그외엔 18년 가까운 세월을 몇장으로 압축해서 써놓은 그의 엽기적인(?) 취미 활동에서나 엿보이는데 제가 너무 타락한 현대인이라선지? 그것들은 좀 유별난 탐미주의자의 신선한 취미정도로밖엔 느껴지지 않습니다만. 19세기엔 이것들이 열거만 해놔도 몸을 떨게 하는 타락의 상징이었을까? 글쎄요? 보석 수집, 금단 서적 읽기, 이런게요?

그리고 제임스 베인을 부추긴 아편굴의 여자는 대체 누구죠? 18년 전 나를 이렇게 만들었다는 말만 있을 뿐이잖나요?

타락에 대한 묘사가 너무 뜬구름입니다. 자기가 타락했다고 말하지 않았으면, 살인이 없었으면, 타락했는 줄도 몰랐을 것 같은데요! 손에 잡히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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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꽃

16.04.05

앨런에겐 무엇을 강요한 건지 궁금해요.

송이

16.04.05

앨런도 그렇죠! 앨런과도 둘도없는 사이였다가 앨런이 도리언을 그토록 증오하게 된 이유가 뭔지 떡밥 안풀어주고요. 작가만 간직한 비밀이 넘나 많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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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꽃

16.04.05

도리언의 살인은 비현실적이었어요. 겉보기엔 그렇게 완벽하도록 선량하게 아름다운 사람의 손에 피를 묻히다니.

송이

16.04.05

자꾸 현실부정하시네욬ㅋㅋㅋㅋ 흠, 하긴, 다른게 묘사가 부족하더라도 살인을 아편으로 잊으려했단 부분만으로도 충분하게 타락하긴 했군요. 애초의 도덕적 범주라는게 없던 인물같기도 합니다. 그걸 헨리가 부추기고 불지르고. 도리언이 헨리보다는 바질에게 더 매력을 느꼈다면 덜 비극적이었을텐데 말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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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꽃

16.04.05

도리언을 각성시킨 헨리 경의 책이 실존하는 거라면 저도 읽어보고 싶어요.

송이

16.04.05

검색해볼까요. 실존할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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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꽃

16.04.05

뮤지컬은 이 책에 대해 다룰까요? 지나치게 환상적이라 연출에 부담이 있을 것도 같고.

송이

16.04.05

제생각엔 못해도, 그 책을 헨리 경이 선물하는 부분과 도리언이 그 책에 심취해서 깔별로 수집하고 독서하는 장면이 스쳐가는 정도로라도 나오기는 할듯요.

송이

16.04.05

전 헨리가 싫습니다. 세상사 다 아는척하지만 사실은 겁쟁이에 겉만 반지르르 포장한 회의주의자일 뿐인 인물이예요. 그런 인간유형은 친구로서든 가족으로서든 아무런 도움도 안됩니다. 이런 작자가 도리언 곁에 있었다는게 도리언의 가장 큰 불행이 아니었나 싶네요.

송이

16.04.05

불쌍한 도리언. 사실 해만 되는 인물이란걸 몇번이나 깨닫고 멀리하려 했지만 그때마다 운명이 도리언을 도와주지 않았어요. 마수처럼 걸려들게 만들었죠! 운명이 나쁜거지 도리언이 나쁜건 아닙니다.

송이

16.04.05

(오스카와일드가 나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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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꽃

16.04.05

전 그를 끊임없이 꾀어내는 헨리의 존재가 마음에 들어요. 헨리는 사실 윤활유일 뿐이라고 생각해요. 도리언에게는 천성적으로 비범하고도 남다른 양심이 있어요. 예술가이기를 포기한 시빌을 저주하다가, 자살로 마무리한 그녀의 비극적 인생에서는 위안을 얻는 부분에서 최초로 드러나듯이(그는 그녀의 죽음이 훌륭한 연극의 훌륭한 결말이라 했지요), 그는 비밀스럽고도 극단적인 이기주의자예요. 자기 자신만을 사랑하고 자기 자신의 만족을 위해서만 살죠. 양심은 오로지 그의 타락을 위로하기 위해서만 길을 찾아요. 오스카 와일드는 그런 그를 위해 헨리라는 핑계를 만들어준 거예요. 아담이 뱀의 존재를 원죄의 변명으로 삼듯이, 그와 같은 장치로서의 헨리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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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꽃

16.04.05

128-129p.
"아, 베질, 그걸 제가 어떻게 압니까?" 도리언 그레이는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황금색 기포가 들어 있는 섬세한 베네치아산 유리잔에 든 엷은 노란색 와인을 마셨다. 그리고 몹시 따분한 눈길로 홀워드를 바라보았다.
"그만 하세요. 벌어진 일은 벌어진 일이고, 과거는 과거일 뿐이라고요."
"어제를 과거라고 하나?"
"실제로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가는 상관없잖아요? 하나의 감정을 지우는데 1년이나 걸리는 건 오로지 어리석고 천박한 인간일 따름이에요. 자기 자신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은 쉽게 기쁨을 창조하는 것처럼 슬픔도 쉽게 끝낼 수가 있지요. 난 내 감정에 좌우되고 싶지 않아요. 오히려 그 감정을 이용하고 즐기고 지배하고 싶다고요."
"도리언, 어떻게 그런 끔직한 말을! 뭔가가 자네를 완전히 딴 사람으로 만들어버렸군. .... 지금의 자넨 마치 심장도 없고 연민도 없는 냉혈한처럼 말하고 있어. 이게 다 해리의 영향 때문이라는 거, 난 알고 있네."
도리언은 상기된 얼굴이 되어 창쪽으로 다가가더니 잠시 밖을 내다보았다. 쏟아지는 햇살에 푸른 정원이 눈부시게 반짝이고 있었다. "베질, 난 해리에게 무척 감사하고 있어요." 마침내 도리언이 입을 열었다ㅡ"당신한테 감사하는 것 이상으로요. 당신은 나에게 헛된 것밖에 가르쳐주지 않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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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꽃

16.04.05

도리언이 자신의 타락에 타인을 핑계삼지 않는 면모도 좋아요. 어쨌든 정직하네요. 자신이 타락했고, 그 타락의 원흉이 자기 자신이란 건 처음부터 끝까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으니까.

송이

16.04.05

전 그게 왜 타락인지 모르겠어요. 살인 말고는 타락이라할게 있나요? 시빌의 죽음에 가책이 없는건, 네, 도덕적으로 좀 무감각한 사람이죠. 하지만 그정도의 도피가 타락이라고 할 수 있는 정도인가요? 그렇다면 19세기는 너무 엄격한 시대였고 제가 사는 21세기는 너무나 타락한 시대인가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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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꽃

16.04.05

살인이 있잖아요? 도덕적 외면이 있고, 향락에의 비윤리적 몰두가 있고, 묘사가 막연할 뿐이지 있을 건 다 있는 것 같은데..?

송이

16.04.05

흐음. 생생한 묘사를 기대했던 걸까나. 제 마음을 저도 모르겠다는 것이야

송이

16.04.05

다른 출판사는 어떱니까? 동서문화사는 문어체적이고 멋스럽지만, 은유가 많은 편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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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꽃

16.04.05

전반적으로는 비슷비슷해요. 동서문화사는, 유일하게 화실을 아뜰리에라 칭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듯이, 고전적이고 예스러워요. 바질을 베질이라 하는 유일한 곳이기도 하고요. 하지만 유달리 은유가 많다기엔 다들, 정말 비슷해요. 문장을 다듬는 표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롤리타처럼 문맥 자체가 뒤바뀌는 건 없어요. 

문예출판사는 문장의 뉘앙스가 가장 친절하고 단어 선택도 다정해요. 가장 쉽게 읽히지만, 중요한 문장에서 필요한 함축미도 잊지 않았어요. 동서문화사에서 지나치게 힘을 주어 번역한 문장을 오히려 문예출판사에서 간결하고 단정한 어휘를 통해 완성함으로써 그 의미가 더욱 강해지는 경우도 종종 있었어요. (지금 당장 기억나는 건 동서문화사의 "난 영생의 미를 지닌 것이면 무엇이든 질투를 느껴요."와 문예출판사의 "난 아름다움이 시들지 않는 모든 것을 질투해요.")

예담과 더 클래식은 엇비슷하지만 부분부분의 어휘는 예담이 조금 더 고풍스러워요. 더 클래식은 문장끼리의 연결이 중간중간 투박한 데가 있고요. 다만 더 클래식의 경우에는 책 특유의 환상소설적인 이미지가 깎인다는 느낌을 주었어요. 문장들이 깎이고 깎여서 평범해졌달까.

열린책들은 역시나 의역이 많아요. 작가의 호흡보다 번역가의 호흡이 강해요. 세련됨을 가장했지만 작가 위로 떠오르는 번역가의 존재감이 거북할 때가 있고, 오스카 와일드의 긴 호흡을 지나치게 끊어서 나열한 경향이 있어요.

호흡은 펭귄클래식이 길지만, 자칫 산만해지기 쉬웠고요. 호흡 조절이 간혹 애매한 경우를 빼면 문장은 무난과 평범 사이로 예담, 더 클래식과 비슷했어요.

송이

16.04.05

사스가 열린책들ㅎㅎ 원서도 고고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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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꽃

16.04.05

좋아용

송이

16.04.05

오스카 와일드가 어느 쪽의 인물인지 궁금해 찾아봤습니다.

오스카 와일드는 이 작품에 대해 "도리언 그레이는 내가 되고 싶었던 존재이고, 헨리 워튼 경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나 자신의 모습이고, 바질 홀워드는 실제 나의 모습이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송이

16.04.05

헨리인가 했는데 셋 다라니.대단히 자만한 사람인건 알겠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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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꽃

16.04.05

바질이 실제 자신의 모습이라니. 바질이길 바랐으나 헨리와 도리언 어딘가의 오스카 와일드였을 것만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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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꽃

16.04.05

소설 속 도리언에게 결여된 것이 무엇인지 알았어요. 아름다움도, 부도, 태생도, 지위도 전부 다 있지만 고고함이 없어요. 비범한 부도덕함은 있어도 뻔뻔할 정도의 태연자약함이 부족해요. 어려서는 그것이 순진함이라는 미덕이었지만 마흔에 이른 후반에는 줏대 없이 흔들리는 모양에 지나지 않았죠. 그래서 이따금 비굴하게 느껴졌던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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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꽃

16.04.05

도리언의 미모에 대한 찬사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데. 서너번 정도에 그친 것도 아쉬워요. 뮤지컬에는 도리안 그레이의 시들지 않는 영원불멸의 미모에 대한 찬탄의 넘버가 하나 정도는 굵직하게 있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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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꽃

16.04.05

뮤지컬 시놉시스에는 헨리 경이, 자신의 예상과는 다르게 변해가는 도리언에게 당혹감을 느낀다고 나오네요. 원작의 헨리는 도리언에게 지금 그 모습 그대로 완벽하니, 변하지 말라고 거듭 말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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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꽃

16.04.05

혹 뮤지컬에서는 헨리도 도리언의 영혼의 비밀을 목격하게 될까요? 그러니까, 바질만이 보았던 그의 변해버린 초상을.

송이

16.04.05

호- 그러려나? 헨리 경이 원작과 달라질 건 분명해보입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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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꽃

16.04.05

이 책을 처음 읽었을 때ㅡ밤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그때 변해가는 초상화의 얼굴이 너무 무섭고, 거기에서 유희를 느끼는 도리언이 너무나도 비상식적이고 부도덕해서 소름 끼쳐서, 이불 속에서 읽었던 것 같은데.. 처음의 기억이 희미해지고 다시 만난 도리언은, 음. 무섭지도 소름 끼치지도 않고 그저 아름답고 가련한 한 청년처럼만 느껴져요. 책은 그대로인데 그사이 제가 타락했나 봐.

송이

16.04.05

저는요 후반부 도리언은 별로 매력적인걸 모르겠습니다. 특히나, 제임스 베인이 죽은후에서야 착하게 살아야지- 다짐하곤, 그 다짐 기껏해야 한번인가 실천했나? (하지만 것도 결국 자기만족용이었죠?) 그래놓곤 초상화가 변하진 않았을까?? 기대하는 모습이ㅋㅋ 좀 어이상실ㅋㅋ 연꽃님말대로 비굴하게 보였습니다. 초상화를 변하게 하고 싶었음 모든걸 자수했어야지!그정도는 해야 회개하고 초상화도 변하지! 고작 눈가리고 아웅하는 정도로 초상화가 변하기를 기대하다니! 비겁해!

송이

16.04.05

그동안 악행을 얼마나 했는데! 선행 한번으로 초상화가 깨끗해지길 기대하다니! 양심리스요! 그리고 고작 그거 한번에 선행하겠다는 마음 집어치우고 곧바로 초상화 없애서 증거인멸하려드는 성정도 참으로 악하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