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있는 공연이었다. 

 

주의 첫 공연에서는 휴일을 보내는 동안 ‘드라큘라가 너무나 하고 싶었던’ 시아준수를 만난다. 의욕 충만한 시아준수가 포문을 여는 첫 공연은 늘 즐겁다. 그의 행복감이 공연을 매개 삼아 있는 그대로 전달되는데, 즐겁지 않을 수가 없다.

이에 더하여 꽤 신선한 변화들까지 함께한 오늘은 무척이나 색다르고 재미있는 공연이 되었다.

 

하나, 2주 만에 돌아온 염색, 그리고 시선을 강탈하는 새로운 반지. 새빨간 머리카락 아래로 오른손 중지에서 존재감을 숨기지 않는 굵은 붉은 보석이 연신 반짝거렸다. 강렬하기 그지없었다. 붉은 머리칼, 붉은 귀걸이, 붉은 반지의 윗비베이를 상상해보라. 단 하나의 색으로 오색찬란을 경험케 하는 신세계였다.

 

둘, 만족스러운 음향이었다. 쩌렁쩌렁하면서도 깨지지 않았다(중요). 귀를 즐겁게 강타하는 음악에서 듣기에 거슬리는 파열음이 전혀 없었다. 무엇보다 사람의 음량이 다부지고 옹글어 오케스트라의 반주에 묻히지 않으면서도 선명했다. 오케스트라는 오케스트라대로 노랫소리를 압도하지 않되 고유의 존재감을 유지했다. 삼연 들어 최고이자 최적의 음향이었다. 매일 오늘만 같다면 좋겠는데.

 

마지막으로 새로운 지휘자(부음감님)과의 만남. ‘삼연치고는’ 낯설 정도로 느린 박자의 공연이었다. 초연 초반에 가까울 정도로 느리되 일관된 박자 속에서 공연이 진행되었다. 널뛰지 않고 안정감 있게 흐르는 음악이 제법 신선했다. 박자가 여유로워지자 꽤 많은 것들이 들렸다. 그가 내지르는 음, 끄는 음, 당기는 음 하나하나의 처리부터가 훨씬 여유로워졌다. 나아가서는 시아준수 특유의 호흡을 조절할 때의 섬세함도 충분하게 전달되었다. 언제 이렇게 음절 단위로 천천히 흐르는 she를 들었는지 모르겠다. 묘지의 문밖으로 나서고도 네 번이나 연거푸 쏟아진 ‘영원히 영원히 영원히 영원히’ 흐르는 Life After Life는 또 어떻고.

 

새로운 감독, 새로운 박자. 박자가 이렇게나 중요했다는 걸 깨닫는 와중에 무엇보다도 감탄에 가까운 즐거움을 선사한 오늘의 수훈자는 시아준수였다. 

기존에 ‘하던 대로’가 있으므로 부음감 휘하의 오케스트라에 적응이 필요할 법도 하건만, 시아준수에게 박자란 그저 타고 노니는 대상일 뿐이었다. 성량이 풍부하고 원체 호흡이 기니 박자가 빠르든 느리든 하등 문제 될 것이 없었다. 오히려 음악이 들쑥날쑥하지 않고 일관되게 흐르자 물을 만난 듯한 그였다. 단적으로 피날레의 ‘자유를 줘.’ 오케스트라가 예정된 음을 타고 내려올 때까지 처음의 피치와 성량, 호흡을 그대로 유지한 채로 이어가는 그를 보는데, 와아, 정말.. 믿고 듣는 시아준수의 청중일 수 있어 얼마나 감사하고 짜릿했던지.    

 

가장 감탄했던 대목은 악기 위에 충실히 노래를 입혀가면서도 넘버가 다채로울 수 있도록 변화를 꾀하는 그를 목격할 때였다.

아무래도 박자가 느려지니 평소의 텐션보다 공연이 늘어지는 듯한 느낌이 어깨 위로 내려앉을 때가 있었는데, 그때면 어김없이 강약을 달리하여 변주를 주는 시아준수가 있었다. 당장에 기억에 남는 것만 해도 트레인 시퀀스의 죽은 영혼 누구도 ‘저-주’ 못하리, 피날레 전부... 

 

그리고 꼭 따로 말해야 하는 것. 오늘의 The Longer I Live는 신기로 부리는 재주에 가까웠다. 그가 선창하는 부분, 오케스트라가 리드하는 부분이 교차하는 넘버인 만큼 서로의 호흡이 중요한데 도저히 처음 맞추어 보는 사람 같지 않았다. 노래하는 이와 악기 소리가 서로 호응하고 있었고 그 한 중앙에 그가 있었다. 악기의 소리들이 메마른 음성을 따라 엮이며 합창의 대단원으로 나아가는 장면을 목격하는 감격이란. 이야말로 드라큘라에서는 처음 느껴보는 조화로움이 아닐지.

 

즐거웠다. 공연이 ‘재미’ 있었다. 변화한 박자를 숙련되이 다루는 그를 따라가는 즐거움에 시간이 어떻게 흘러갔는지도 몰랐다. 얼굴천재, 노래천재, 박자천재. 삼연창이라도 기꺼이 하고 싶었다.

 

400년 동안 연구한 백작님의 말씀을 시아준수에게 전하고 싶다.

신은 역시 불공평하군요, 인정합니다.

 

*

 

윗비베이, 돌아온 “꼭 다시 만날 거라 믿습니다.”

삼연 들어서는 내내 확신의 ‘꼭 다시 만나게 될 겁니다.’를 들려주었는데! 듣고는 귀를 의심했을 만큼 반가웠다. 

 

At Last. 넘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정석의 앳 라스트가 있는가 하면 오열의 앳 라스트도 있다. 오늘은 후자에 가깝되 말랑말랑한 앳 라스트였다. 물기 머금어 보드랍게 뱉어진 문장들은 손가락으로 터트릴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녀를 향하여 한껏 호소하고 있었으나 강제력은 없었다. 간절하지만 허용범위를 벗어난 생떼는 쓰지 않았다.

 

미-나! 루시의 죽음 이후 자신을 거부하기만 하는 미나를 부르는 음성. 3월 12일 이후로 오랜만에 거세게 긁어, 한탄에 가까운 일갈로 들려주었다.

 

미나의 유혹, 가운을 풀어내는 손길 한 박자 한 박자에 절도가 흘러넘쳤다. 탁, 탁, 탁, 탁. 우스갯소리 조금 보태어 마치 탁구 하듯(ㅋㅋ) 탁탁 소리가 날 것만 같은 절도 있는 손놀림을 보았어.

 

It’s Over, 반헬싱을 향하여 말뚝을 치켜드는 그의 손에서 붉은 반지가 조명을 받아 매섭게 깜빡였다. 중지에 박힌 거대할 정도로 큰 핏빛의 보석. 하필이면 그 손으로 말뚝을 쥐고 있어서 더욱 기묘했다. 얼핏 보면 말뚝에 핏물이 맺힌 것 같았기에. 시아준수의 드라큘라는 이런 우연조차도 스산하게 아름다운 법인가 하였다.

 

트레인 시퀀스. 불면증의 드라큘라는 오지 않았다. 대신 관 속에서 반헬싱의 목소리를 떨쳐내려는 듯 고개를 연신 좌우로 내젓는 그를 보았다. 푸른 어둠에 잠긴 탓일까. 도리질하는 고갯짓이 무겁게만 느껴졌다.

 

줄리아의 죽음 이후 반헬싱과 드라큘라의 대치. 이 장면에 대한 개인적인 불호와는 별개로 오늘 그와 강태을 반헬싱의 호흡이 대단히 좋았다. 처음으로 이 장면에서의 감정선이 피날레까지 이어진다는 느낌을 받았을 정도로.

특히 러빙유 리프라이즈에서 삼연 들어 두 번째로 그의 뺨을 선연하게 가로지른 눈물을 보았을 때는, 오늘의 공연이 그의 마음으로 깊이 침투하였음을 알았다.

 

피날레 또한. 

이제는 무르익을 대로 무르익은 피날레에 더 무슨 말을 하겠나. 이것 하나만을 적어두면 언제라도 기억할 수 있겠지.

근래 들어 온전하게 노래로 불러주었던 ‘차가운 암흑 속에 저주받은 내 인생’이 오늘만큼은 노래에서 절규로 변모한 건, 순전히 그의 감정이 복받쳤기 때문이었다.

피날레 내내 그랬다.

미나의 손을 붙든 채로 관으로 돌진할 때도, 마지막 입맞춤에 앞서 그녀의 우는 뺨을 쓸어줄 때도.

머리가 아닌 가슴이 느끼고 이끌어낸 피날레였다.

 

 

덧, 기차역. 오른손으로 왼뺨을 슬며시 감싸 쥔 그가 읊조렸다. 

“역시.. 신은 공평하군요.“

너스레와 함께 두 팔을 가로 펼치더니, 어깨를 으쓱하기까지. 

 

3월 14일에 처음 보여주었던, 프레시 블러드에서 입맛을 다시는 손길도 돌아왔다. 볼 때마다 시선 강탈이야.

 

커튼콜, 혼자서의 마지막 인사. 깊이 허리 숙인 다음 상체와 고개를 꽤 빠르게 일으켰다. 그 덕에 마치 Life After Life의 런웨이에서처럼 머리칼이 차르륵 젖혀지며 흘러내렸다. 아름다웠다.


댓글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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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꽃

20.03.18

잠들기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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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꽃

20.03.18

아침에 눈을 뜨는 것도 즐겁다. 눈 뜨면 어제 공연을 다시 생각할 수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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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꽃

20.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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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꽃

20.03.18

오늘 하루 쉬는 덕에 어제의 공연을 딱 하루만큼 더 곱씹을 수 있는 것까지 즐겁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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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꽃

20.03.18

프레시 블러드의 입맛 다시기가 고정 디테일이 되면 좋겠다. 그래서 실황 디브이디에도 수록되고 축하공연이나 콘서트에서도 볼 수 있으면 좋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