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후기 쓰는 방식을 조금 바꿔볼까 해요. 이 글에서는 그날그날 달라진 부분들 위주로 간략하게 적습니다. 날짜에 구애받지 않는 시시때때로의 감상은 새 글로 적거나 스레드에 담을 예정입니다.

* 플레이어를 포함하여 글 하나하나를 기우듯 채워갈 생각이라, 이에 맞추어 최근수정일 순으로 게시글 정렬을 변경하였습니다. 

 

🔖   8월 2일  ∣   8월 5일  ∣   8월 7일  ∣   8월 8일  ∣   8월 12일  ∣   8월 13일  ∣   8월 14일  ∣  

 


 

8월 2일 (일) 2시

김준수, 김소향, 손준호, 홍경수, 신영숙, 배다해, 김영주, 문성혁, 이상준, 이시목 / 구민경 부음악감독

 

빨간 코트. “쓰기만 하면 끝~”은 이렇게 정착되는 것일까? 오늘은 마무리까지 충분한 여유를 입은 음이었다. 멜로디가 대사화된 적은 종종 있어도, 대사화되었던 구간이 멜로디로 돌아온 적은 드물어서 굉장히 놀랍고 또 몹시 기뻐하는 중.

 

나는 나는 음악. “난 예의도 몰라.” 팔랑팔랑 경쾌하게 손을 돌리는 동작이 계속된다. 아이 신나. 얼굴도 손짓을 따라 장난스럽게 찡긋할 때마다 사랑스러움이 두 배 세 배.

그리고 오랜만의 이시목 아마데와의 공연. 무대 위 두 사람의 표정이 꼭 같기에 감격했다. 황홀한 기쁨, 순수한 행복. 같은 감정이 두 사람 사이에서 공명하고 있었다. (상술은 링크로)

 

정직한 가족. “봉쥬르, 마담!” 체칠리아에게 꽃다발을 건네고 뿌듯하고 호쾌하게 ‘하하하!’ 웃던 볼프강. 귀여웠다. 

 

나는 쉬카네더. 브라보~! 오랜만에 단출하게 한 번. 대신 길게 늘어뜨려 맺었다.

쉬카네더의 대사가 마무리되기를 기다리는 동안에는 가볍게 손을 쥐었다 피며 준비운동을 했고, 어깨춤과 뒤돌아 점프! 의 콤보는 오늘도 계속되었다. 짜란~ 하듯 점프해서 뒤도는 동작 너무 좋아요. 

“꽃받침 한 거야?” 질문에 쑥스러운 느낌은 여전하면서도 조금 더 자신 있게 대답했다. “네~!” 

단체 군무에 맞춰서 두 팔을 들었다가 그대로 핑그르르 도는 맵시가 참 예뻤고, 점점점 길어지는 숭구리당당이 몹시 흥미진진하다. 두 손을 바깥 방향으로 연신 핑글핑글 독무에 매진. 과연, 혼자 어디까지 출 것인가.

그런데 볼프강, 깨물어주겠다는 쉬카네더의 말에 흠칫 떨며 무서워했던 거 맞지요? ㅎㅎ

 

오르간 연주. 작곡한다며 술병으로 피리 부는 아들에게 좀 더 연습하라던 아버지. 레오폴트의 애드립이라니. ㅋㅋ 순간적으로 얼떨떨해하는 볼프강의 얼굴을 본 것 같다. 오늘의 의외의 웃음.

 

모두 가짜. 고민하다 쑥스럽게 “그..그..그래!” 아르코 백작의 흉내에는 오늘은 완전히 면역된 얼굴이었다. 평정을 유지하는 광대가 못내 낯설었다.

 

네 모습 그대로. 오늘의 용서는 두 버전. 주먹을 꼭 쥐었다가 두 손 편 채로 맞대어서는 애교를 실어 쓱쓱 비벼보였다. 

별난 행동으로 오랜만에 파리를 잡았고, 애드립도 리뉴얼되었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니? %@#*%# 어우 숨넘어가는 줄 알았어.”

 

사랑하면 서로를 알 수가 있어. “이 모~습 그대로.” 김소향 콘스탄체, 31일에도 느꼈지만 이때 내려앉는 자세가 남다르다. 앉은키가 키와 비교해 작은 편일까? 두 사람의 눈높이가 한 뼘 정도나 차이 날 정도로 폭삭 앉는데, 그 눈높이 차이가 보기에 매우 예뻤다. 굉장히 그림이었어.

 

사랑하면 서로를 알 수가 있어 리프라이즈. “이 모..습 그..대로..” 리프라이즈에서 처음 울컥했던 날, 〈왜 나를 사랑하지 않나요〉에서 갈무리되지 않은 감정을 터트려낸 느낌이었다면 오늘은 김소향 콘스탄체를 보며 차오르는 얼굴을 보았다. 흥건한 물기를 고스란히 전해받은 얼굴이 울먹울먹하며 가사를 뱉어냈다.

 

구걸편지. 볼프강을 끌어안은 콘스탄체, 제발 좀 내버려 두라며 제 등 뒤로 그를 숨겼다. 콘스탄체의 등 뒤로 그가 완전히 숨겨진 건 아주 찰나였으나, 필사적으로 숨기는 사람과 필사적으로 숨는 사람의 모습이 두 눈에 오래 남았다. 

 

쉬운 길은 늘 잘못된 길. “당신은! 상관하지 마.” 미약하나 또 한 번 들을 수 있었던 그의 도발.

“전부 내 몫의 결정”의 검지는 손준호 콜로레도와도 완전히 자리를 잡은 듯하다.

 

혼란. 31일에는 절뚝이느라 속도를 내지 못했지. 오늘은 절뚝이면서도 걸음을 재촉했다. 걷는 방법도 까먹은 것 같은 걸음걸이로 앞서가는 마음을 따라 부단히 애를 썼다. 

 

피날레. 오랜만에 흐뭇한 그림이었다. 홍경수 레오폴트와 이시목 아마데, 두 사람 너머의 시아준수. 꿈꿔왔으나 가질 수 없고, 돌아갈 수도 없는 이상향 같은 신기루가 그의 눈에도, 나의 시선에도 어른어른 일렁이다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그와 함께.

 

내 운명과 모차르트의 죽음은 링크로.

 

 

그밖에. 

빨간 코트. 아, 얼굴! 부여잡았다가 준쮸꽃 피우며 꽃받침. 

정직한 가족. 휼륭해요!

네 모습 그대로. 힘이 장사구나 / 무슨 말인지 모르겠니? 어우 숨넘어가는 줄 알았어 / 파리 잡기

빈에 남겠어. 똥이나 처먹어라 이 똥싸개야! / 똥싸개야! 안 닦았냐?!

 


 

8월 5일 (수) 8시

김준수, 김소향, 민영기, 홍경수, 신영숙, 배다해, 김영주, 신인선, 이상준, 김승후 / 김문정 음악감독

 

여느 날보다 명정한 음향. 특히 배우를 막론하고 또렷한 저음부. 단층을 들여다보는 것처럼 선명한 색색의 소리들. 뮤지컬 극장의 음향이 이럴 수 있었던 것이군요.

 

정직한 가족. 오늘따라 배우들의 움직임이 유독 크게 느껴졌던 넘버. 특히나 실감 났던 장면은 둘. 체칠리아에게 건넨 꽃다발을 도로 회수하려는데, 그녀가 한사코 버티자 흡사 잔디를 뽑듯이 억척스레 빼냈던 것.

또 하나는 그를 잡아끄는 알로이지아의 손길, 그의 어깨가 놀라 흠칫 곤두설 정도로 세찼던 것.

여느 날보다 1.5배는 크고 기운찬 동작들에서 열의 충전한 배우들의 의욕이 느껴졌다. 음향과 더불어 과연 실황의 날은 다르구나, 싶었을 만큼.

 

엄마의 죽음. “엄-마?” 불러보는 무구한 음성이 미디어로 남는 것이다. 기쁨을 주체할 수 없어요.

 

얼마나 잔인한 인생인가. 오늘의 가창에 박수를. 깊은 경외를.

사실 공연에 앞서 일말의 염려도 없었다면 거짓말. 오늘이 36회차의 공연 중에서 공식적 기록으로 남는 유일한 날이니만큼 시아준수 본인에게도 의미가 남다를 터. 의욕이 앞서며 자칫 힘이 더 들어간다거나 긴장할 수도 있지 않으려나.. 넘겨짚었던 내가 섣불렀다. 무대 위의 시아준수, 그도 우리와 같은 사람인가. 오늘 역시 매번 올리는 공연의 또 다른 하루일 뿐이었다. 매번 해왔던ㅡ내일을 생각하지 않고 온몸을 불사르는 공연의 또 하루였고, 딱 그만큼의 백 퍼센트의 얼마나 잔인한 인생인가였다.

신들린 듯 박자를 타는 노래, 아무렇게나 휘갈긴 음표를 꼭꼭 씹어뱉으며 볼프강의 감정을 입히는 천의 기술. 모든 것이 있어야 할 자리에 그가 하던 그대로 제 형상을 갖추어가며 번쩍번쩍 빛을 냈다.

‘시아준수가 하던 대로’의 있는 그대로가 영영의 기록으로 남은 것이다.

더 중한 무대와 그렇지 않은 날의 경중을 따로이 매기지 않고, 무대라면 그저 투신하는 사람. 연습 그 이상으로 실전에 강한 사람. 내가 익히 아는 바로 그 시아준수였다.

 

나는 쉬카네더. 브라보~ 브라보! 용케 두 번 하였으나 신인선 쉬카네더의 대사와 충돌하여 어미는 황급히 마무리 지어야 했다. 

오늘의 새로운 잘생김은 건반 앞에 막 자리를 잡았을 때. 고개를 모로 기울인 채 얼굴에 닿은 머리카락을 정리하던 순간에. 다소 굳힌 미간이 무심하면서도 섹시했다.

“친구, 날 따라올 수 있겠어?” 쉬카네더의 도발 같은 물음엔 다소 깔랑깔랑하게 얼굴 근육을 써서 대답했다. 이런 깔랑미는 또 처음.

군무 동작 직후에 핑그르르~ 김턴은 오늘도 날렵하게. 점점 본격적이고, 점점 더 아름다워져요.

 

모두 가짜. 프라토 공원 입성 기념 춤은 오지 않았지만 신인선 쉬카네더와 맞춘 새로운 동작 하나! 양 손바닥으로 눈을 가린 채 나란히 두더지 흉내를! 둥지에서 고개를 내미는 뻐꾸기 같기도 한 새로운 동작이 너무 귀여워서 그만 웃었지 뭐예요.

그리고 무려 두 번이나 신체절단 흉내를. 한 번은 앙상블에게, 한 번은 쉬카네더에게. 쓱쓱 신나서 제 배를 가를 때의 얼굴이 얼마나 경쾌한지, 시아준수 알아요?

 

신이 선택한 남자. 장치를 가르고 나올 때였다. 찰나의 고갯짓으로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넘기는 맵시가 아주 근사했다. “더러운” 너의 엉덩이는 좀 치워! 상반신을 살짝 기울여 선 채로 리듬 타는 건 또 어땠고.

 

네 모습 그대로. 용서 빌기는 오늘도 두 단계를 거쳤다. 주먹을 꼬옥 쥐었다가, 손바닥을 맞비비며 살그머니 웃었다.

빗자루로 짧은 실랑이를 한 끝에는 민망한 듯 은근하게 “놓으면 어떡해.”

아무 말 속사포는 꽤 여유롭고도 다소간 젠체하는 느낌을 곁들여 신선했다(초반에). 매듭짓는 대사는 오늘도 “무슨 말인지 모르겠니? 숨넘어가는 줄 알았어.”

넌 확실히 돈은 없다는 콘스탄체의 지적에 적정한 음량의 “아니야~”도 무척 오랜만. 확실히 음량이 크고 또렷했던 오늘의 음향.

 

내 운명 피하고 싶어. 헉. 도입부. 자유를 선포하기 무섭게 뒤따라온 아마데를 발견한 그가 오랜만에 고개를 가로저었다. 미약하였으나, 인지할 수 있을 정도로는 충분하게. 세상에. 잘 오지 않는 고개 젓기가 오늘 오다니. 그래서 미디어로 남게 되다니. 

덤연코자 하지만 무게감이 느껴지는 고갯짓. 제 턱밑까지 추격해온 재능이라는 그림자를 향한 결의인 동시에 체념이기도 한 이 동작. 좋아해요. 자주 볼 수 있으면 좋겠어.

 

그리고 소소하게 재미있었던 것. 아르코 백작이 그에게로 던진 오늘의 하얀 가발. 유독 봉긋하게 볼륨감을 갖추어 자리를 잡았지 뭔가. 사람의 머리 모양을 제대로 갖추어 빵실빵실한 가발은 꼭 살아있는 무엇처럼 보였다. 가발의 형태가 너무도 생생하여 얼핏, 볼프강이 이제까지 ‘강요받아왔던 삶 그 자체’처럼 느껴진 것이다. 

착시인가 환각인가.

그 이상한 감각도 잠시. 새하얀 위용을 뽐내던 하얀 가발이 그의 손바닥에서 짓뭉개졌다. 

“더 이상 이 하얀 가발도 필요 없어.”

형체 없이 뭉그러지는 가발이 꼭 그가 자유를 선언하며 등 뒤에 둔 전부처럼 보였다.

 

여기는 빈. 성공적인 연주회. 신영숙 남작부인과 인사할 순서였다. 그녀의 손등에 입을 맞추어야 하는데, 두 사람이 동작에 착오가 있었는지 비쥬로 급선회를 하려던 중 갑자기 취소되었다! (feat. 볼프강) 비쥬를 한 것도 아니고, 안 한 것도 아닌 채로 두 사람 사이에 애매하게 남은 공간에 웃어버렸지 뭐예요.

 

빈으로 간 레오폴트. 제스처도, 반발하는 음성도 평소보다 미약하게 강하더라니, 이어지는 감정도 그랬다.

 

왜 나를 사랑하지 않나요. “가까이 갈수록 멀어지는 느낌.” 늘 그가 차오르는 가삿말. 특히 여기서부터였다. “더욱 알 수 없는 것은.” 울컥 치밀어 오른 것을 덩어리째 삼키는 목소리가 생생했다.

사는 동 ‘안’을 한숨처럼 짙게 흩날리는 것, 덕분에 정말 오랜만. 사랑해달라며 두 손을 가슴 위로 포개어 기도하듯 절절한 것 역시도.

 

슈테판 대성당. 왜 나를 사랑하지 않나요가 강인하게 꿋꿋했다면, 슈테판 대성당은 지극히 섬세했다. 전자가 드솟아가는 여정이라면 후자는 함몰이었다.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도 있는 법. 상반된 강약 조절은 그 자체로 볼프강 모차르트가 살아내는 풍파였다.

 

혼란. 아버지가 제게 그러했던 것처럼, 콘스탄체의 뺨을 감싸 쥐며 그가 속삭일 차례였다. “널 사랑한다.” 그녀의 뺨을 그러 쥐더니, 이어 허겁지겁 어깨를 끌어안았다. 이 대목에서 포옹까지 가는 건 오랜만. 매달리듯 끌어안은 어깨에서 머문 것도 잠시. 또 금세 뿌리쳐내는 그의 변덕에 황망해하는 콘스탄체와 소악마 같은 아마데가 한 시야였다. 그를 보며 절망하는 사람과 이 모든 절망의 근원을 등 뒤에 나란히 둔 채로 그가 절규했다. 절규 끝에 무릎으로 무너졌다.

 

황금별. 공간을 채우는 음성을 무력하게 듣던 그가 천천히 고개를 내저었다. 절레절레. 끔찍하다는 듯, 듣기 싫다는 듯. 이렇게 명확한 고갯짓은 처음. 

퇴장. 절뚝이면서도 황급하게 도망가는 퇴장에 점점 속도가 붙는다. 절뚝이는 다리를 그렇게 함부로 쓰면 안 될 텐데.. 안타까움은 나의 몫.

 

난 예술가의 아내라 리프라이즈. 미안해, 나 못 갈 것 같아. (나 오페라를 써야 돼) 가 오지 않았다. 그렇게나 정신이 없었던 가요, 볼프강. 

다소 놀라웠던 건 그 어느 때보다도 작곡에 몰두하는 속사포 음성들이 선명하게 들렸던 것. 춤과 판타지에서부터 나는 박자 나는 쉼표 나는 나는 내뱉는 음성들이 음표처럼 떠다녔다. 레퀴엠 작곡할 때도 이렇게 크게 들리면, 괜찮을까? 싶을 정도로 또렷해서 얼마간의 염려도 있었는데 다행히 그렇지는 않았네.

 

쉬운 길은 늘 잘못된 길. “천한 것들을 대상으로 한 성공이지만.” 멸시를 숨기지 않는 콜로레도의 언사에 그가 미간을 찡그렸다. 정확히 ‘천한 것’에서 울컥. 분개하고 반발하는 얼굴을 보았다.

“전부 내 몫의 결정.” 민영기 콜로레도와 완벽한 대치를 이룬 오늘. 검지로 찍어 누를 듯 짚는 그와, 여유를 가장하며 가리키는 콜로레도. 검지 콕이 도입된 이래 가장 치열했다.

그런데, 그래서였나. 검지 대치를 완벽하게 성공해낸 성취감에 고무되었던 탓일지? “더 쉬운 길은”의 합창 파트를 오늘 부르지 않았다. 갸웃.

 

레퀴엠 의뢰. 콜로레도 앞에서는 끝까지 버티고 섰으나, 그가 사라지자마자 끈 떨어진 인형처럼 톡 무릎으로 무너지는 볼프강. 이제는 상체까지 전부 쓰러트리고 만다. 공연이 거듭될수록 이 순간을 버텨내는 그의 생명력이 고갈되어가는 것이 또렷하게 보인다.

“4주, 4주..” 되뇌임이 절박했다. 거의 우는 듯했는데, 예감하고 있는 것이었다. 레퀴엠을 위한 이 4주가 자신에게 할애된 마지막 시간임을.

 

모차르트의 죽음. “나는 박자, 나는 쉼표” 까지 닿았을 때였다. 아득하게 멀리 보는 시선이 길었다. 죽음이 임박하여서는 삼라만상이 스쳐 간다 하지. 딱 그 순간임을 저 먼 곳에 둔 시선에서 알 수 있었다. 볼프강, 지나온 삶을 돌아보고 있구나. 살아온 시간들이 하나하나 빠르고도 아프게 스쳐 가고 있구나.

그중 무엇 하나라도 그를 웃음 짓게 하는 순간은 없었을까.

공허하여 그렁그렁할 뿐인 눈에서는 원하는 대답을 얻을 수 없었다.

 

그밖에

빨간 코트. 아~! 얼굴! 부여잡았다가 준쮸꽃 피우며 꽃받침. 

정직한 가족. 발음을 살려 beautiful~ unbelievable~

그 누가 나만큼 리프라이즈. “그렇게만 된다면” 어떻게 하실 건데요?

빈에 남겠어. 똥이나 처먹어라 이 똥싸개야! / 똥싸개야! 안 닦았냐?!

 


 

8월 7일 (금) 3시

김준수, 해나, 민영기, 홍경수, 김소현, 전수미, 주아, 문성혁, 이상준, 이시목 / 구민경 부음악감독

 

빨간 코트. 오랜만에 돌아온 발재간. 그리고 어머나. 근래 계속 멜로디를 입혀 맺었던 어미가 발랄한 느낌표로 돌아왔다. “쓰기만 하면 끝!” 입술을 앙 깨물며 맺는 상큼한 얼굴도 함께.

 

정직한 가족. 오늘도 발음을 살려 beautiful~ 그리고 새롭게 incredible~! 언빌리버블의 후속이 인크레더블이 되니, 잠시 드라큘라 생각이 났지 뭐야.

 

얼마나 잔인한 인생인가. 김문정 감독님과의 호흡이 경지에 도달한 날의 목격자가 된 8월 5일 이후, 오늘은 오랜만에 부음감님과의 얼마나 잔인한 인생인가.

이즈음 공연이 진행되고 나니 넘버 별로 선호하는 박자 내지는 선호하는 음감님이 생기게 되었지만, 8/5-8/7 연달아 다른 음감님과 함께한 얼마나 잔인한 인생인가는 이 모든 기호를 깨부수고야 말았다.

5일엔 5일이 완성형이라 여겼지. 이것은 경지이며, 종점이라고.

하지만 오늘 보고 들으며 알았다. 시아준수의 모차르트에게 5일의 노래는 여럿 중 하나의 접근법이자 방법일 뿐이라는 걸.

5일이 달려가는 박자 위에서 처음부터 보란 듯이 질주하는 얼마나 잔인한 인생인가였다면, 오늘은 정반대의 템포 속에서 여유롭게 대기만성하듯 덧칠해가는 얼마나 잔인한 인생인가였다. 충분할 정도로 느린 박자를 결코 그냥 보내는 법이 없었다. 같은 음도 조금 더 길게 끄는 것부터 시작하여, 느려진 박자에서 노래가 자칫 루즈하게 느껴지지 않도록 이곳저곳에 성의껏 쐐기를 박아 넣었다. 박자 따라 음절을 쪼개며 노래를 변주로 탈바꿈해내는 재미가 있어 오히려 더 즐거워도 보였다.

이렇게나 양단인 박자를 연달아 오가는 5일과 오늘, 명확하게 느꼈다. 시아준수의 얼마나 잔인한 인생인가에는 한계값이라는 게 없다는 걸. 어느 박자에서건 노니는 경지에 어떻게 한계라던가, 맞춤옷이라는 게 있겠나. 

그가 부르면 그대로 노래가 될 뿐인 것을.

 

나는 쉬카네더. 이 대목에서 코트와 아웅다웅할 줄이야. 집어 드는 모양부터 심상치 않더라니, 코트의 안감을 만천하에 구경 시켜 주었지 뭐야. 그러고도 제대로 출입구를 찾지 못해서 글쎄 오른팔을 왼소매에 넣어버렸다. 결국 탁탁 도로 벗어버리더니, 브라보, 브라보~! 먼저 해낸 후에야 재차 시도하여 성공. (순간적으로 코트 없이 나는 쉬카네더로 진입하려나?! 싶었는데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오늘의 잘생김은 “날 믿~어!” 와 함께. 노래가 본격적으로 박자를 밟으며 빨라지는 순간 정면을 향하여 탁 내려놓는 고갯짓에 나의 심장도 쿵.

그리고 스타! ‘카!’ 토에서 가지런히 모은 두 팔에 정수리를 포옥 묻어 보였는데, 찰나에도 귀여워. 끙끙.

 

오르간 연주. 오늘따라 두 손으로 각을 잡고 병을 잡았다. 그런데 병피리가 영 시원치 않았지. 하필 그걸 콕 찝은 아버지의 애드립. “관악기는 좀 더 연습하자.” ㅋㅋ

 

황금별. 이 넘버에서 내내 그늘에 머무르기만 하는 사람이 있다면, 난넬. 그늘에도 잠기지만 금세 양지로 건너오는 볼프강과는 달리 뿌리박힌 듯 어둠 속에만 머무는 그녀의 모습이 오늘따라 가여웠다. 오랜만의 전수미 난넬이 너무나 염려 어린 얼굴로 모차르트 부자를 바라보고 있었기에 더욱.

 

네 모습 그대로. 콘스탄체와의 빗자루 실랑이. 데구르르 나동그라진 채 두 발을 높이 올려 유난히 바둥바둥하더니, “힘이 장사구나.” 두 다리로 한껏 바둥대는 모션이 실감 나서 웃겼다.

 

내 운명 피하고 싶어. 솟아오르는 리프트 위에서 오랜만에 무릎을 무너트린 그가 두 팔을 앞으로 뻗었다. 제 앞에 선 아마데를 가리키듯이. 검지로만 찍어서 가리키던 때와는 다른 무게감이 느껴지는 동작이었다. 아마데가 선 쪽을 향해 곧게 뻗은 두 팔에서 어떤 절박함이 전해졌다.

그건 마치.. 이 순간의 목격자가 되어 달라는 신호 같았다.

내 앞을 가로막듯 선 저 존재, 지금도 날 따라오고 있는 저 그림자. ‘내 운명’으로부터 내가 어떻게 걸어 나가는지 똑똑히 지켜봐달라는 사인인 것만 같았다.

 

친구. “브라보~!” 외치며 악보를 팡! 치는 경쾌한 소리를 무척 좋아하는데 오늘 악보를 치지 않았어. 힝구.

 

왜 나를 사랑하지 않나요. “내 안의 내 어릴 적 그 아이, 그도 역시 묻지요.” 의자에 앉은 아이를 가리킬 때면 늘 손바닥이 위로 오도록 했었지. 오늘은 조금 달랐다. 손등을 위로 하여 아이에게로 뻗은 팔은 평소처럼 아이를 가리키는 동작이라기보다는, 아이에게 닿아보고자 본능적으로 내밀어진 것 같았다. 지나간 그 시절을 향하여. 닿을 수 없는 신기루를 향하여.

차마 닿지 못하고 망연히 미끄러지며, 결국 아이를 가리키는 동작으로 마무리되었을 때의 허망함은 그래서 더욱 컸다.

 

아버지의 죽음. 서럽게 울던 볼프강. 사방을 헤매던 고개가 아마데를 발견하고 멎었다. 울음기 가득했던 얼굴이 일순간에 굳었다. 아버지의 죽음조차 음악의 원천으로 삼아 남김없이 먹어 치운다. 일평생 품어왔던 재능의 민얼굴이었다. 와락, 울화가 치민 나머지 잔뜩 일그러진 얼굴로 그가 아이를 향해 단걸음에 달려갔다. 

너, 너, 너!

코앞까지 달려가 악을 썼다. 가득 힘이 들어가 부들부들 떠는 검지로도 비명했다.

소리 없는 아우성이었다.

 

혼란. 도망하는 모습을 이제는 처음 보는 것도 아닌데. 볼 때마다 마음이 아프다. 속도를 높여 사라지는 모습이 항상 혼란의 가장 아픈 지점이다. 눈치 보며 주춤주춤 몸을 빼다가, 끝내 완전히 내달려버리는 등이 너무 슬퍼요.

 

모차르트의 죽음. 심장에서 꺼낸 마지막 영감, 그것을 흘려보내는 내내 얼굴에도 목소리에도 소금기가 가득했다. 이런 날이 또 있었을까. 벌써 25회차를 훌쩍 넘겼는데도 매번 이렇게나 운다. 태어나 처음 죽음을 눈앞에 둔 사람처럼, 항상 이렇게.

 

마지막 순간. 2일에 이어 오늘도다. 오늘도 이시목 아마데를 한 번에 돌아보지 못했다. 몸을 한껏 움츠린 채 고개만 살짝 틀어 아마데의 동향을 먼저 살폈다. 흘긋이는 시선으로 아이가 거부할 수 없는 지척까지 다가왔음을 인지한 후에는 마지못해 숨을 골랐다. 꿀꺽, 무거운 숨을 넘겨 각오를 삼키고 어정어정 더디게 몸을 틀었다.

아마데에게로, 죽음에게로.

“그..리..고..”

두 팔 벌려 아이를 맞이하는 세 음절에 오랜만에 물기가 가득했다. 동시에 음절의 층층에서 두려움이 진득하게 묻어났다.

끝까지 재능이 이끄는 대로 살아왔음을 부정할 수 없다. 그런데, 이것으로 끝이 맞을까? 

울음으로 떨리는 음성이 그렇게 묻는 것만 같았다.

끝내 자신을 삼켜버린 재능에게서 죽음 이후에는 해방될 수 있는 걸까?

선뜻 부정도 긍정도 할 수 없어 두려움 가득한 눈이 내가 목격한 그의 마지막 눈빛이었다.

 

그리고 피날레에 대해서.

 

그밖에

네 모습 그대로. 힘이 장사구나 /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 숨넘어가는 줄 알았어. / 워! 놀래키기

빈에 남겠어. 똥이나 처먹어라 이 똥싸개야! 똥싸개야! 변비냐?

 


 

8월 8일 (토) 7시

김준수, 김연지, 민영기, 윤영석, 신영숙, 배다해, 김영주, 문성혁, 이상준, 김승후 / 구민경 부음악감독

 

빨간 코트. 첫 등장, 오랜만에 리뉴얼되었다. 얼굴을 부여잡았다가, 스르륵 두 손을 모아 손날로 앙증맞은 하트 모양을 그려 보인 볼프강!

쓰기만 하면 끝~♪ 은 하루 만에 멜로디로 돌아왔다. 애드립처럼 즉흥의 대열로 합류한 것이려나. 🤔 

 

나는 나는 음악. “난 예의도 몰라~” 가볍게 도움닫기 하듯 날아올라 손을 팔랑팔랑. “지루한 건 정말 질색”이라면서는 양어깨를 으쓱. 허례허식 모두 벗어던진 자유로운 영혼이 얼마나 사랑스럽던지요.

 

얼마나 잔인한 인생인가. 가창, 가창, 가창. 8월 5일에도 8월 7일에도 결의하듯 느낀 감상을 한 문장으로 압축하자면, 이제 이 넘버의 대항마는 내 운명뿐이리.

오늘은 부음감님의 지휘. 그래서 박자가 여유로웠고, 그래서 충분한 템포를 만끽하며 다양하고 섬세하게 짚어가는 완급 조절이 어찌나 단계단계 선명하던지. 브라보, 브라보!

 

나는 쉬카네더. 두 손을 빙글빙글 돌렸다가 탈탈 털어 준비운동을 마친 후 F~ 쉬카네더와 신호를 나누면서는 검지를 콕 콕 두 번 찍어 보였다. 그쯤이야~ 하듯.

뒤돌아 연주의 끝에 정면으로 되돌아올 때의 얼굴이 완연하게 >_< 표정을 그리고 있어, 뒤돌아 연주할 당시의 얼굴까지 대번에 그려졌다.

스타 ‘카’ 토에선 오늘도 두 팔 위에 정수리를 포옥 묻었다. 어제보다도 분명하고, 확실하게. ‘토’에서 공개될 꽃받침을 위한 작전상의 일 보 후퇴가 틀림없다. 

핑그르르 김턴은 오늘따라 계속 통통 튀어 오르지 뭐야. 덕분에 평소의 유려한 맵시 이상으로 상큼함이 부각되었다.

그리고 역시 쉬카네더를 무서워하는 게 맞았다. 어쩔 줄 몰라하는 쉬카네더를 보며 웅얼대듯 읊조린 한 마디 “무서워.” 나직하게 꿍얼댄 음성이 너무나도 귀엽고 사랑스러웠어요.

 

오르간 연주. 오늘도 두 손으로 제대로 각을 잡고 병피리를 불었다. 귀엽게 결연한 얼굴이 오늘은 소리도 제법 냈다.

 

빈에 남겠어. 아르코 백작과의 실랑이 끝에 글쎄 지팡이가 부러졌다! 황당한 얼굴로 점점 붉어지는 아르코 백작의 얼굴과 눈코입 전부 놀라서 한가득 동그래진 볼프강. 웃느라 넘어가는 객석.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 큰 웃음을 주었다.

 

내 운명 피하고 싶어. 새삼 보면서도 믿을 수 없었던 건 공간을 전부 장악하는 이 거대한 소리가 전부 단 한 사람에게서 나오고 있다는 것. 대자연 앞에 홀로 서면 느낄 수 있는 압도 당하는 감각, 개인의 존재를 하나의 점처럼 만들어버리는 거대한 감각이 오직 그 한 사람에게서 비롯되고 있었다.

 

빈으로 간 레오폴트. 원래 음절을 또박또박 늘려 부르는 부분이었다. “저-는- 아-버-지-의 아-들-입니다”였지. 그런데 지난번부터 앞부분이 다급하다. “저는”을 대번에 뱉어냈어. 다음 말을 꼭 해야 하니, 제발 외면하지 말고 들어달라는 것처럼. 제 말이 끝나기도 전에 아버지가 외면할까 두려운 것처럼 말을 일단 우다다 쏟아내고 보았다. 그 필사적인 태도에 마음이 아팠다.

 

왜 나를 사랑하지 않나요. 사랑해줘요 “내 모ㅡ습ㅡ" 에서의 기이한 경험. 소리의 울림 속에서 느닷없이 공간이 까맣게 바래가는 게 아닌가. 그가 쌓아가는 중인 소리벽이 청신경을 잠식하다 못해 시각까지 덮어버린 걸까. 아니면 깜깜한 어둠을 헤매는 그의 감정이 내게로 완전하게 전이된 걸까.

깜짝 놀라 두 눈을 깜빡이자 시야는 다행히 되돌아왔으나, 놀란 마음은 쉽게 진정되지 않았다. 소리의 시각화. 감정의 공감각적 전달. 잊을 수 없는 감각이었다. 

 

사랑하면 서로를 알 수가 있어 리프라이즈. “이 모습 그대로”의 울컥함은 완연하게 디테일화되었다. 음절이 울음에 쓸려가는 것을 완전히 허락한 것이다.

 

혼란. 비탈길에 놓인 혼란이었다. 이렇게 위태롭고 칼에 벼린 듯 날이 선 혼란이라니. 누구라도 단칼에 베어버릴 듯한 광포함이었다. 재능을 향하여 삿대질하고, 아내의 목을 조르고, 나아가 손까지 치켜드는 기세를 막을 수 있는 건 없어 보였다.

그 자신을 제외하고는.

세상의 끝까지 내달린 폭주를 막아선 건 자멸하는 심신이었다. 

 

눈앞으로 재차 펼쳐지는 황금별도 돌파구가 되어주지 못했다. 그 옛날, 금은보화를 발견한 듯 따사롭게 반짝였던 바로 그 얼굴로 그가 고개를 저었다.

정확하게 제 등을 떠미는 음성을 향하여.

“황금별을 찾길 원하면 그 별을 찾아 떠나야 해.”

잔인한 가사와 거부하는 고갯짓. 별이 낳은 천재가 그 무게에 짓눌려 제 빛을 포기하는 순간이었다.

 

모차르트! 모차르트! 아마데의 채근에 영감을 꺼내기 위해 손을 올린 그가 그 자세 그대로 휘청했다. 절박하거나 울먹이거나 애처로웠던 적은 있어도, 육신의 균형을 무너트리는 모습은 또 처음이었다.

또 하나, 피아노 다리 아래로 치워버렸던 술병을 다시 끌어와 마신 것도 처음. 제 손으로 멀찍이 치워둔 술병을 도로 가져와 목을 축이는 모습에서 볼프강인 동시에 시아준수가 강하게 느껴져서 마음이 울렁울렁하고 말았다.

 

모차르트의 죽음은 링크로.

 

그밖에.

정직한 가족. 아름다워요!

네 모습 그대로. 진짜 놓으면 어떡해 / 나도 뭐라는지 모르겠어 사실 / 워! 놀래키기

빈에 남겠어. 똥이나 처먹어라 이 똥싸개야! / 똥싸개야! 뭐 먹었냐?!

 


 

8월 12일 (수) 3시

김준수, 해나, 손준호, 홍경수, 신영숙, 전수미, 김영주, 문성혁, 이상준, 이서준 / 김문정 음악감독

 

빨간 코트. “내갛ㅎ 저런 놈을 위해 세레나데를 쓰다니.” 헛웃음이 어미에 콕 박혀 있었다. 입꼬리를 비스듬히 올려 마음에 없는 웃음을 그려 보이면서. 기가 찬 얼굴은 허탈해 보이기도 했다.

 

모차르트는 왔나? “아빠, 일어나세요!” 크게 들으면 왠히 기분이 좋은 문장. 오늘은 완연하게 정식 사운드로 편입된 수준의 음량이었다.

 

나는 쉬카네더. 뒤돌아 점프! 한 볼프강, 오늘은 글쎄 코트 자락으로 건반 가장자리에 얹어둔 술잔을 명중시켰지 뭐야. 데구르르 그대로 바닥으로 나동그라진 술잔을 앙상블과 객석만이 보았다. 뒤돌아 연주 삼매경에 제 술잔이 떨어진 것도 모르는 볼프강에게 앙상블이 술잔이 떨어졌다는 수신호를 연신 보낸 후에야, 돌아서서 어라, 내 술잔 어디 갔지? 하는 얼굴로 눈코입을 전부 부풀렸다. 술잔의 행방에 어리둥절했던 것도 잠시, 회수를 위해 몸을 접는데 피아노 아래로 꾸깃꾸깃 여차저차 버벅이는 동작이 몹시도 귀여웠다. 회수한 술잔을 들고는 혹시나 하는 표정으로 입 안에 잔을 털어보았지만, 전부 엎질러진 물. 못내 아깝다는 듯 눈썹을 늘어뜨리며 원위치하는 것으로 술잔의 여정이 마무리되었다. 흥미진진했던 해프닝. 

 

이어서는 오늘도 아름다운 김턴과 계속하여 새로워지는 숭구리당당. 오늘은 후반 독무 파트에서 양팔을 가슴 높이에서 팔짱 끼듯 접어 파닥파닥 댔다.

참. 꽃받침 한 거냐는 쉬카네더에게 그가 육성으로 “네” 대답을 하면서부터는 2회로 양분되어 있던 꽃받침이 1회로 대통합되었다. 첫 꽃받침의 자세를 흐트러트리지 않고 대답할 때까지 이어가는 것으로 변모!

꽃받침 앵콜 후에는 ‘무섭다’ 말만 하지 않았을 뿐 표정으로 다 보여주었다. 곰지락대는 두 손이 한 마디 덧붙이려는 기색이었는데, 고민 끝에 빠르게 단념하는 모습까지도 다소간의 당황스러운 심리상태를 적확하게 전달해주었다.

 

모두 가짜. 더 구경하고 싶은데.. 쉬카네더가 잡아끌자 칭얼거리는 얼굴이 몹시 사랑스러웠다. 눈코입 전부 쳐져서는 힝구.

베버 아저씨의 죽음에는 얼떨떨하게 “예..?” 되묻는 목소리가 또렷하게 들렸다.

오늘의 “그,그,그래!” 는 곰곰 고민하는 제스처 대신 두 손을 꼭 부여잡았다가 짜잔! 하는 동작과 함께였다. 대답하는 음성도, 동작도 음.. 수줍었다? 음, 아니, 그보다는 베버 가족들에게 나 이렇게 결단력 있는 사람이노라 잘 보이고 싶어 하는 강아지를 보는 것 같았다. 새삼 사랑에 목마른 그가, 매사 인정에 고픈 그가 보였던 찰나.

 

신이 선택한 남자. “더러운 너의 ‘엉덩이는 좀 치워!’” 검지로 저격하듯이 허공을 콕! 찍으며 날린 일갈이 정말 상큼했다. 앙큼상큼.

 

빈에 남겠어. “아니지!” 아르코 백작의 일갈에 움찔하며 파르르 놀라는 어깨를 좋아하는데, 오늘 오지 않았어. 대신 친구에서 브라보! 종이를 팡! 치는 경쾌한 소리는 돌아왔다.

그리고 8월 8일의 해프닝을 되짚어준 아르코 백작의 애드립. 지팡이로 실랑이하는 중에 타이르듯 나무라듯 “이거 악해!” 나는 아르코 백작과 애드립 감성이 맞나 봐. 제일 웃겼당. ㅋㅋ

 

내 운명 피하고 싶어. 도입부였다. 입술을 앙 깨물며, 결연해진 턱으로 그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미약하지만 시선에 따라서는 끄덕였다고도 느낄 수 있을 법한 움직임이었다.

그리고는 내내 기묘한 얼굴이었다.

제 앞을 노려보면서도 웃는 얼굴. ‘올 것이 왔음’을 받아들이며 정면을 향하여 각오를 다진 얼굴이 웃고 있었다. 옅게, 싸느랗게, 날카롭게. 아마데를 돌아보기 직전까지 내내.

 

왜 나를 사랑하지 않나요. “왜 사랑해주지 않나요,” 가슴 앞에서 두 손으로 두 주먹 불끈 쥐었던 그가 허둥지둥 자세를 고쳤다. 엉성한 궤적을 남기는 동작에서 그의 동요가 보였다. 어찌어찌 심장 가장 가까이에서 기도하듯 포갠 두 손. 애원하듯이 다잡아 붙든 그 두 손으로 그가 기도를 맺었다.

간절하게,

“사랑해줘요.”

닿고 싶어도 닿을 수 없는 아버지를 향하여서는 다시 두 손을 풀어, 멀리로 뻗으며.

필사적으로.

“내 모습 그대로.”

 

혼란. “악마, 악마야, 악마야! 다 악마야..” 모두 다 악마, 악한 늑대 뱀들. 초연의 그때 그 가사처럼 모든 것을 폭로하고 싶었던 것만 같은 마지막의 ‘다 악마야’였는데. 제 풀에 지쳐 무너지느라, 아마데에게 소스라치느라, 끝맺지 못했다. 폭로조차도 책망조차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그였다.

 

마술피리 작곡. “이런 대작을 만들 때면, 외로움이 그 뿌리가 되는 법이야.” 대사를 길게 늘어뜨리는 문성혁 쉬카네더, 울먹울먹한 그를 위해 시간을 끌어주는 듯한 배려의 호흡이었다. 무대 위의 배우가 상대배우를 존중하고, 존중하는 만큼 아끼고 있음이 전해지는 이런 순간들에 매번 감사한다.

 

모차르트! 모차르트! 한 손에는 술병을 쥐고, 한 손으로는 아마데를 검지로 콕콕. 웃으며 화내는 얼굴이 무언가에 취한 것도 같고, 홀린 것도 같았으며, 정신이 잔뜩 팔린 것도 같았다. 

또 오늘의 사소하게 다른 점. 보통은 다 마신 술병을 통! 소리 나도록 명쾌하게 바닥에 박아뒀다면, 오늘은 바닥에 내려둔 그대로 질질질 밀어서 치웠다. 술병을 들어 올릴 힘조차도 없는가 싶어, 한 순간에 왈칵해버린 건 안 비밀. 

 

레퀴엠 의뢰에서부터 모차르트!모차르트!까지, 일명 머리카락을 승화시켜낸 연기는 링크로.

 

 

그밖에

빨간 코트. 아, 얼굴! 감쌌다가 준쮸꽃 피우며 꽃받침. 

네 모습 그대로. 용서는 주먹과 손 비비기의 두 버전 / 힘이 장사네. / 무슨 말인지 모르겠니? 숨 넘어가는 줄 알았어. / 워! 놀래키기

빈에 남겠어. 똥이나 처먹어라 이 똥싸개야! / 똥싸개야! 안 닦았냐?!

 


 

8월 13일 (목) 7시

김준수, 해나, 민영기, 윤영석, 김소현, 배다해, 주아, 문성혁, 이상준, 이서준 / 구민경 부음악감독

 

극 초반에는 오빠 목소리가 오늘따라 까끌하다 느껴지는 부분들이 있었는데, 내 운명에서 다 뿌셨다 시아준수가. ㅎㅎ 공연을 하면서 좋아지는 목소리 신기해..

 

“이것 봐, 얼마나 멋져.” 코트 입으며 툴툴대는 얼굴이 두 발을 콩콩. 몸을 사뿐사뿐 띄우며 불평했다. 

 

나는 나는 음악. 어제 오랜만에 이서준 아마데와 만났지. 그래서 아이와 손을 맞대는 동작에서 높이 차이로 인한 버퍼링이 있었다. 그걸 기억해둔 시아준수, 오늘은 아예 손을 무릎 아래까지 쑥 내려보냈다. 덕분에 주춤하지 않고 성공!

그리고 부음감님과의 여유로운 박자, 시아준수는 역시 충분한 여유를 선호하지요? 각양각색의 산호초처럼 만발하는 강세에 노래가 너무나도 다채로웠다. 아름답게, 따사롭게, 풍부한 소리들. 백미는 마무리의 길고도 짙게 빼낸 진성. 일전에도 그윽한 진성으로 들려준 적이 있기는 하지만, 오늘처럼 작정하고 짙게 빼낸 건 처음.

 

그 누가 나만큼. 어깨로 툴레툴레 하기 전, 두 팔 벌려 에휴 아빠가 그러면 그렇지 하는 동작. 크게 기대도 하지 않았다는 듯한 제스처가 오늘따라 마음 아팠다. 오죽 학습이 되었으면 저럴까. 볼프강 좀 받아주시지, 아버지..

 

피아노 소나타. 연주를 마치자마자 벌떡 일어나는 볼프강. 초조하게 들이키는 숨소리가 마이크를 타고 선명하게 전해졌다. 연주회의 여운을 느낄 새도 없이 반응부터 살피는 모습이 먹먹했다. 그늘진 공간에 관객 한 명 없이 홀로선 모습까지. 빈, 화사한 조명을 받으며 미소 가득 띤 얼굴과는 너무도 대비되기에 만감이 교차했다. 하필 그의 어머니가 마지막으로 본 모습이 화사한 빈이 아닌, 파리에서의 그라서 더더욱.

 

엄마의 죽음. “와아아아, 나의 새로운 심포니!” 엄마에게서 아마데로 달려가는 여기, 오블에서는 질주하다시피 내달리는 그의 ‘비거리’가 체감된다. 오른 각도를 사랑하는 이유 중 하나.

 

나는 쉬카네더. F~ 쉬카네더의 사인에 검지로 콕 찍어 대답한 볼프강. 쌍꺼풀까지 짙게 만들어 보인 얼굴이 꽤 진지했다. 

그런데 나무통 징검다리를 건너던 중 휘청했던 게 맞지요? 깜짝 놀라라. 

숭구리당당 후반부의 파닥파닥에는 오늘은 박수까지 짝짝 곁들였고, 꽃받침 앵콜 요청에는 당황한 듯 되물었다. “네, 네?”

 

오르간 연주. 어제부터 새로운 것. 작곡하고 있었죠~ 회심의 농담은 통하는 법이 없다. 그만 일어나라, 아버지의 칼같이 빡빡한 대답에 하아아.. 짙은 한숨이 마이크를 타고 또렷하게 들렸다.

 

그 누가 나만큼 리프라이즈. 누나에게서 뒷걸음질하며, 책망하는 듯이 그녀를 가리키던 검지. 

 

모두 가짜. 우리 집으로 오라니까? 체칠리아와 콘스탄체 사이에 낑긴 볼프강. 양쪽에서 투둑 투둑 건드려대는 어깨빵 콤비에 시달렸다. 곰곰 심각한 고민 끝에 “그,그,그래!” 수락하고 나서야 자유로울 수 있었다. 

신체절단 흉내는 오늘은 글쎄 쉬카네더가 했지 뭐야. 그의 배에 한쪽 팔을 붙이면서, 씨익. 그 바람에 시아준수, 행동의 자유가 제한된 채로 가만히 몸을 대주는데, 정말정말 너무너무너무 귀여웠다. 앞으로도 종종 쉬카네더가 흉내 내도 좋을 것 같다.

 

신이 선택한 남자. 팟팅!의 시대는 간 걸까. 오늘은 팟팅 대신 칼날을 위로 높이 들어 올려서는 톡! 쳐보였다. 

 

네 모습 그대로.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 숨넘어가는 줄 알았어.” 까지 하고 나서 거짓이 아님을 보여주려는 양, 그가 크게 후우~! 숨을 내쉬었다. 턱 끝까지 차오른 숨을 돌리는 것처럼.

 

빈에 남겠어. E에 가까운 D의 각도에서 오랜만에 선연하게 볼 수 있었던 것. “우린 모두 고귀한 존재~” 동료 악사들에게로 달려가던, 동의를 구하는 듯하던 눈. 외면하는 등을 보며 실망만 얻고 말던 눈.

 

내 운명 피하고 싶어. “나는, 누구인가.” 제 앞의 세상을 검지로 쿡 찌른 그가 곧이어 두 손을 힘주어 폈다.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시선이 매섭게 떨어졌다. 양손을 번갈아 훑는 눈이 해답을 구하고 있었다. 스스로 던진 질문에 대한 대답을. 대체 나는 누구인가.

 

아아, 그리고 이 박자의 내 운명을 얼마 만에 듣는 거지? 왜 이렇게 오랜만인 느낌이었을까. 시작부터 차오르는 감각에 전율했다. 초 단위가 세 배 정도 길어진 듯한 박자 속에서 한음한음 공들여 세공하는 음성을 만끽했다. 허투루 흘려보내는 음이 하나 없었다. 다시쓰기 하는 음절 또한 없었다. 어-떻! 게 탁구공처럼 튀어 오르는 강세가 있는가 하면, 말뚝 박힌 심지의 단단한 어떻어게가 있었다. 원 없이 다변하며 대담무쌍했다. 단단하게 걸어서 가는 박자에서 시퍼렇게 만개한 내 운명이었다.

 

사랑하면 서로를 알 수가 있어. 소파에 몸을 포옥 묻은 채 노래하는 도입부, 한 손을 가슴 위에 살포시 포개어 얹으며 그가 눈을 빛냈다. “그녀는 나만의 천사”를 꿈꾸는 얼굴이었다. 

그리고는 얼빠의 최대 난관. 여기 이 황홀하게 아름다운 얼굴을 크게도 보고 싶은데, 황홀한 소릿결을 깎이지 않은 채로 듣고도 싶어서 갈팡질팡. 치열한 고민 끝에 오늘은 얼굴을 택했습니다. ㅎㅎ 왜냐하면 오랜만에 E에 가까운 D였기에 “넌 나의 음악~” 이라 노래하는 두 눈을 놓칠 수 없었거든요. 얼마 만에 두 눈 전부 다 보는지! 마지막 기억 속 모습 그대로 천년의 사랑스러움이었어요.

 

사랑의 둥지에서 개인적인 웃음 포인트. 이런 종이 따위는 필요 없다며 찢어서 버리는 해나 콘스탄체. 오늘따라 유독 벅벅 종이 찢는 소리가 박력 넘쳤다. 과연, 힘이 장사네. 

 

친구. “다음번 연주회는 더 성공할 수 있을 거야.” 아마데를 타이르듯 보다, 깃펜을 빼앗아 들 차례. 한 손으로 홱 앗아 들어야 했는데 그만 놓치고 말았다. 피아노 의자 아래로 저만치 날아간 펫을 보며 에잇! 툴툴대며 주섬주섬 회수하는 모습에 그만 웃어버렸네. 예상치 못한 사안이 준 오늘의 소소한 웃음. 

 

빈으로 간 레오폴트. 제가 내민 화해의 술잔으로 눈길 한 번 주지 않는 아버지에게서 돌아서며 그가 두 팔을 널찍이 가로 벌렸다.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는 듯이, 별로 상처받지 않았다고 말하는 것처럼. 그 옛날 잘츠부르크에서와 꼭 같이. 이 동작, 바로 이 제스처가 일종의 방어기제였다. 아버지의 외면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방어막과도 같았다.

외면당할 때마다 상처도 받지만, 그의 내면에 강하게 도사리고 있는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 역시 커진다. 술잔을 들지 않은 한 손을 아버지에게로 내밀어 어필했다. “지금 이런 내 모습” 한 번만 제대로 봐달라는 듯이.

급기야는 마지막 남은 한 수까지 전부 내보이는 아들. 제 두 손으로 직접 헌납한 재능상자. 그 위로 내려앉는 아버지의 손길에 그가 희망에 차서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는 나를 봐주겠지, 이제는 웃어주시겠지. 희망과 함께 간신히 옅게 웃어 보인 얼굴은 활짝 피어나기도 전에 배신당했지만.

 

왜 나를 사랑하지 않나요. “왜 사랑해주지 않나요.” 어제는 두 손으로 두 주먹 불끈 쥐었지. 오늘은 한 손을 조심스레 심장 위로 포개었다. 어제의 동작이 각오처럼 강하여 결연했다면 오늘은 애원조였다. 아버지의 사랑을 갈구하는 그는 여전히 어린 아들이었다.

마무리 구간의 호흡도 꽤 신선했다. “내 모-습—”이었던 그간과는 다르게 어미를 부드럽게 내빼어서 ‘내 모-스-읍ㅡ’으로 맺었다. 어미의 초성이 모음이 되니 여려진 발성 덕에 훨씬 애달픈 마무리가 되었다.

 

구걸편지. 뱉어내라며 닦달하는 베버 가족에게 근래에는 꽤 강하게 성을 냈던 그였는데(제발 그만 좀 해!!!) 오늘은 그럴 기운도 없었던 걸까. 느낌표로 맺었던 문장이 흐물흐물 흘러갔다.  “제발 그만 좀 해…”

정체 모를 노크 소리에는 온 힘을 다해 경련한다. “나 없는 거야, 작곡해야 돼.” 파고들었던 콘스탄체의 품을 있는 힘껏 밀쳐내며 피아노로 피신해. 엉겁결에 등 떠밀린 콘스탄체의 허망한 얼굴은 전혀 보지 못한 채로. 

 

아버지의 죽음. 아니야, 아니야. 비보에 비명 하듯 그가 어절을 쏟아냈다. 안돼, 안돼. 그 순간에도 악상에 열중하는 아마데를 발견하고는 단걸음에 다가갔다. 너, 너, 너! 아이를 향해 힘이 들어가지 않는 양 검지를 내세우며 울분했다. 

 

혼란. 위태로운 비탈길의 혼란. 리프트를 오르던 중 그가 발작하듯 깡총 뛰어올랐다. 계단 하나를 훌쩍 뛰어넘은 동작, 극치를 찍은 불안정함이었다. 

“다 악마야!” 어제는 완전하게 맺지 못했던 문장, 오늘은 제대로 맺었다. 뭉그러지지 않은 비명이 메아리처럼 되돌아왔다. 악마, 악마, 악마.

 

도망은 시즌 2에 돌입한 것 같다. 주춤주춤 일어선 그가 아마데를 흘긋 돌아보았다. 묵묵하게 제 뒤를 따라오는 그림자에 크게 소스라쳐서는 걸음을 재촉해 보았지. 그리고는 다시 혹시나 하는 얼굴로 빼꼼히 돌아보았다. 보이는 건 무표정한 얼굴로 성큼성큼 쫓아오는 그림자. 그 모습에 그가 기겁하여 몸을 돌렸다. 겁에 질린 얼굴로 더는 뒤 돌아보지 않고 그대로 내달렸다. 아이를 피하여서, 쫓아오는 제 운명으로부터 멀리멀리. 

 

레퀴엠 의뢰. 콜로레도와의 마지막 대치까지 끝마치고 끝끝내 심신이 허물어지는 순간, 오늘은 한쪽 팔로 바닥을 짚어 버텼다. 어제처럼 상체까지 완전히 엎어지는 사태를 막아냈어. 대견하게도.

 

모차르트! 모차르트! 생명수를 들이키는 볼프강. 병을 들어 올리는 동작에 힘 조절이 되지 않았던지(그리 할 여력조차 없었는지ㅠ), 마시는 물보다 흘리는 양이 훨씬 많았다. 왈칵 쏟아진 물이 메마른 숨구멍이 아니라 머리카락 끝을 전부 적셨을 정도로. 

 

툭, 툭. 늘어졌던 그를 아마데가 일으켜 세우는 순간을 기점으로 전후의 표정이 이렇게 양분된 날이 있었을지. 광기에 사로잡혀 내달렸던 얼굴이 강제각성 후에는 내내 괴롭게 울먹울먹했다. 저를 옭아매는 재능 앞에 어쩔 줄 몰라 하며, 달라는 대로 하염없이 악상을 내주었다. 가시덤불에 막혀 퇴로 없는 제 처지에 엉엉 울다시피 하면서.

 

 

그밖에

빨간 코트. 오랜만에 손하트.

정직한 가족. 훌륭해요! 이어서 발음을 살려 beautiful~ 한영의 콤비는 처음. 

얼마나 잔인한 인생인가. 시작부. 얼굴 위로 단단하게 뭉친 머리칼을 떼어내는 손. 꼼지락꼼지락꼼지락 노래에 앞서 손가락이 얼마나 바쁘던지. 

신이 선택한 남자. 나보고 한 얘기지 지금? 더러운 놈?!

네 모습 그대로. 두 팔 벌려 안녕한 후 1단계의 용서 빌기. 두 손을 펼쳐 쓱쓱 / 힘이 장사네. /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 숨넘어가는 줄 알았어. 숨 돌리듯 크게 후우~! / 워! 놀래키기

빈에 남겠어. 똥이나 처먹어라 이 똥싸개야! / 똥싸개야! 변비냐?!

마술피리. 시작되자마자 하하하 생으로 내뱉어 웃던 음성.

 


 

8월 14일 (금) 8시

김준수, 김연지, 손준호, 윤영석, 신영숙, 배다해, 김영주, 문성혁, 이상준, 김승후 / 구민경 부음악감독

 

빨간 코트. “내 머릿속에 흘러나오는 아름다운 음악~ 꿈꾸는 빨간 코트 입고!” 피아노 의자로 껑총 뛰어오르는 동작이 어찌나 가볍던지. 흔한 표현이지만 정말로 깃털 같더라 볼프강. 

 

나는 나는 음악. 깃펜을 빼앗아 직접 악상을 써 내려가던 중, 잠시 고개를 든 그가 아마데와 시선을 맞추었다. “난 포르테” 난 피아노, 춤과 환타지. 저 스스로를 음악이라 칭하며 그가 찡긋 웃었다. 완전히 이모티콘 >_< 표정을 만들어가며 온 얼굴로. 티 없이 맑은 얼굴, 상념 없는 자유로운 영혼, 원 없이 순수한 행복. 보고 듣기에 얼마나 예쁘고도 귀하던지. 이 모습에서 내가 지난 십 년을 살아왔음을 재차 깨달았다.

 

모차르트는 왔나? 콜로레도가 힘껏 구겨서 던져야 할 악보가 오늘따라 빳빳한 채로 날아갔다. 원래대로라면 구겨진 악보를 집어 들고 모멸감에 떨어야 할 그가, 오늘은 제 손에 힘을 주지 뭔가. 그제야 다소간 꾸깃꾸깃해진 종이를 보고 소소하게 웃었다.

 

정직한 가족. 김영주 체칠리아, 꽃다발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점점 더 힘을 주어 버틴다. 빼앗으려는 자와 빼앗기지 않으려는 자의 진검승부. 그 바람에 꽃다발에서 애꿎은 꽃송이 하나가 휙 떨어져 나갔다. 포물선을 그리며 저 뒤로 휘릭~

그 어머니에 그 딸이라고, 그를 잡아끄는 알로이지아의 손길도 얼마나 억세던지. 늘 강한 편이긴 하지만 오늘은 가슴부터 끌려간 그의 상체가 지나간 자리에 잔상이 남을 정도였다!

 

나는 쉬카네더. 술잔에 대고 팡팡 손뼉을 친 볼프강. 두 손을 부딪쳐 내는 소리보다 훨씬 둔탁하면서도 텅 빈 금속성이 그가 술잔을 내려칠 때마다 텅텅텅 울렸다. 술잔박수를 치는 내내 브~라~보~ 를 추임새처럼 길게 늘어뜨리는 모습이 한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닌 것 같았어.

F~ 에는 오늘도 검지를 흔쾌하게 접어 보였다. 그쯤이야 아무 문제 없다는 듯이.

앉아서 술을 마신 후에는 크으~ 술맛이 쓰다는 듯이 도리도리 고갯짓을 했고,

오늘의 별표. 스타카토가 리뉴얼되었다. 만세, 꽃받침, 천사시아의 순! 새 단장에 감탄한 쉬카네더가 꽃받침 이케이케 한 거야? 감탄하자 마무리로 양손 슈퍼브이까지! 노래 말미의 앵콜 스타카토도 자연스럽게 천사시아가 되었다. 수미쌍관의 아름다운 마무리였어.

 

오르간 연주. 두 손으로 제대로 각 잡은 얼굴이 오늘은 비장하기까지.

 

황금별. 금은보화를 앞에 둔 듯 꿈꾸기 전이었다. 남작부인이 보여주는 세상 앞에서 그가 미간을 굳혔다. 미세하게 금이 간 이마는 찡그렸다가도 어리둥절해 했고, 점차 빠른 속도로 벅차올랐다. 한 걸음만 나가면 성벽 밖에는 이런 세상이 있었구나. 이제껏 내가 이 모든 것을 모르고 살았구나. 찬탄하듯 탄식하듯. 드넓은 세상 앞으로 떠밀어진 그가 전율했다.

 

모두 가짜. 곰곰 고민하더니, 수줍게 그,그,그래 ㅎㅎ 그리고 그걸 콕 짚은 아르코 백작. 부끄럽냐?! 그래 ㅎㅎ 똑같이 따라해 보이니 시아준수, 웃을 수밖에. ㅎㅎ

신체절단 흉내는 야무지게 두 번을 모두 해냈다. 앙상블에게, 쉬카네더에게. 쉬카네더와는 서로 하려고 충돌한 느낌이 다소 웃겼다. 

 

신이 선택한 남자. “더러운 너의 엉덩이는 좀 치워!” 오늘은 정면이 아니라 (코트를 받아준) 앙상블을 향해 검지를 조준했다. 헹가래 중에도 방방 돌리는 두 손으로 구석 어딘가를 짚었는데 무엇이었을까. 🤔 

 

네 모습 그대로. 아마데를 멀리 실어 보내며 두 팔 벌려 빠삐한 후에는, 용서는 어제와 같이 두 손을 펼쳐 슥슥 비벼 보였다. 그리고는 굉장히 바빴어. 얼굴 정리하는 양손이 우다다다 얼마나 다망하던지. 콘스탄체가 가까워지기 전에 달라붙은 머리칼을 양 손가락으로 수습 또 수습하는 다급하기 그지없는 모습이 몹시도 귀여웠다.

그럴 때는 방법이 하나 있어. 두 눈을 반짝이며 묻는 콘스탄체에게 “도망~가!” 대단히 중대한 비밀을 알려주는 것처럼 숙연한 말투 또한 귀여웠지.

 

빈에 남겠어. 가발로 장외홈런을 해낸 볼프강. 무대 밖으로 사라져버린 가발을 쫓아 달려 나가는 아르코 백작을 보며 얼마나 웃었는지. 씩씩대는 어깨로 끝까지 정색을 유지하는 그의 얼굴에 더 웃음이 차올랐던 건 안 비밀.

“너처럼 귀찮게 하는 하인은 처음 본다.” 개탄하는 콜로레도를 올려다보며, 궁정의 사용인들에게 붙들린 채로 그가 웃었다. 피식. 비웃음 새는 얼굴에서 시건방미가 멋지게도 가득가득.

“당신 얼굴 볼 일 없거든?!” 되받아친 후 으씨! 한 마디 더 그르렁대는 건 손준호 콜로레도와 대치할 때만 본 것 같은데, 설마 정말로 특정배우와만 하는 디테일인 건 아니겠지. 🤔 

 

내 운명 피하고 싶어. 도입부. 아마데에게서 시선을 돌린 그가 고개를 저었다. 숨이 차오르는 가슴을 질끈 내려 앉히며, 저 스스로를 다독이듯이.

“거짓 없이 울고 웃는 삶에, 취해…. 살고 싶어..” 방점 찍듯, 강하게 내뱉는 강세를 도맡아온 ‘취해’가 변하리라 생각한 적은 없었는데. 처음이었다. 연약하고도 먹먹한 음성. 이렇게 물기 가득한 음성으로 두 음절을 놓아버린 건 처음.

“나는!” 제 가슴을 두 번 탕탕 두드린 그가 자조하듯 자문했다. “누구인가.” 제 눈앞의 세상을 검지로 찍으며. 

 

시작부부터 머리카락 한 가닥이 얼굴을 가로지르고 있었지. 굳이 정돈하지 않은 탓에 아마데에게 팔을 찔릴 때까지도 그 모습 그대로였다. 그런데, 찔린 팔을 부여잡고 중앙으로 되돌아온 얼굴에 머리카락이 세 가닥으로 늘어있는 게 아닌가. 그 모습이 참 묘했다. 뿌리쳐도, 끊어내도, 끊임없이 그를 향해 달라붙는 그림자처럼 보여서.

 

왜 나를 사랑하지 않나요. 아이를 향해 뻗은 손, 손등을 위로 하여 아스라이 뻗어진 손이 먹먹했다. 노래 끝에 들이킨 숨소리가 이렇게 또렷했던 적은 또 있을지.

 

슈테판 대성당. “마-음 굳게 먹고서 겸손하라 하셨지.” 아버지 말씀을 되새기며 자책하는 얼굴이 몹시도 아팠다. 그래, 아빠가 그렇게 말씀하셨지. 하지만 난 듣지 않았죠 아버지. 후회와 죄책감으로 얼룩진 얼굴이 스스로 기적의 끝을 입에 담았다. “이젠 대가를 치를게요.”

 

혼란. 오늘의 걸음걸이 대체 뭐였지. 비틀비틀 앞뒤로 오가는 그는 제가 뭘 어떻게 걷는지 자각조차 없어 보였다. 닥치는 대로 움직이는 모양새가 어지럽게 팔 자로 비틀어졌다. 균형 잃은 건 걸음걸이만이 아니었다. 높낮이를 마구잡이로 바꾸어 가며 쏟아지는 목소리도 혼란을 부추겼다. 혼란이 혼란을 만들고, 혼란 속에서 혼란을 낳고 있었다.

사방이 막힌 어둠 속에서 털썩 무너진 그의 앞으로 비추어지는 유일한 빛, 황금별. 그러나 그 빛은 어둠을 몰아내기는커녕, 극대화하는 올가미였다.

 

‘마술피리’ 작곡. “좋아요” 체념조의 한숨 같은 가녀린 대답도, 쉬운 길은 늘 잘못된 길. 거의 하늘을 향해 삿대질하듯 내세운 검지로 외쳤던 “꺼져!”도 처음.

 

레퀴엠 의뢰. 오늘은 완전히 넘어졌다. 어제처럼 지탱해내지 못했어. 인어공주처럼 비스듬한 자세로, 완전히 힘을 잃은 상체가 늘어졌다. 

 

모차르트! 모차르트! 술로 목을 축이는 볼프강, 뒤로 한껏 옮겨간 중심이 거의 나동그라진 듯한 자세로 생명수를 들이키지 뭔가. 두 다리도 들어 올린 채여서 이미 이성이 날아가기 시작했구나, 예감할 수 있었다.

강제 각성 전후로 양분되는 표정 변화는 오늘도 이어졌다. 각성 전에는 광기 어린 얼굴로 날을 세워 웃다가 노려보았다가 내달렸다가 하였다면 각성 후에는 운다. 울먹울먹 울어. 울다가 허탈하게 웃고, 또 갑자기 울화가 치민 듯한 얼굴로 또 울어. 끝이 없는 아마데의 탐욕을 두 눈으로 선연하게 목도하고서는 어깨를 떨며 울었다. 

 

모차르트의 죽음. 피아노에 기댄 몸, 말 없는 눈이 풀려있었다. 초점을 잃은 채 꽤 오래 멈춰 있었어. “내 혀끝에 죽음의 맛이..” 첫 문장을 내뱉기까지 숨 막히는 침묵이 있었다.

 

 

그밖에

빨간 코트. 가볍게 트위스트하듯 발재간.

정직한 가족. 아름다워요!

네 모습 그대로. 정말 옛날부터 느꼈는데 널 쥐잡듯이 잡더라. / 무슨 말인지 모르겠니? 숨넘어가는 줄 알았어 / 워! 놀래키기

빈에 남겠어. 똥이나 처먹어라 이 똥싸개야! 똥냄새, 야씨.. 아 똥냄새!

사랑의 둥지. 끌려가는 콘스탄체에 놀라 쫓아가며 한 마디, “잠시만”이 또렷하게 들렸다. 처음이야. 

구걸편지. 제발 그만 좀 해!!! 어제 연약했던 만큼을 더하듯이 강하게.

 


 

8월 15일 (토) 7시

김준수, 김소향, 손준호, 홍경수, 김소현, 전수미, 주아, 문성혁, 이상준, 이시목 / 김문정 음악감독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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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꽃

20.08.19

15일을 써야 18일을 쓸 텐데요.